매일신문

취임 석달 맞는 이홍구총리

지난 연말 경북도의회가 승인한 경북도의 올 예산 1조1천3백76억9천4백만원이 아직도 뒷말을 남기고 있다. 통상 의회는 집행부의 예산편성안에 '견제의칼질'을 하기 마련이지만 지난번 경북도의회는 당초 편성보다 오히려 18억5천만원을 증액시켜놓았기 때문이다. 오는 6월선거를 앞두고 있는 의원들이자신들의 지역구로 서로 예산을 끌어가려하다보니 '증액승인'이란 웃지못할결과를 낳았다는 얘기다.그 뿐만이 아니다. 예결위 소속 의원들은 올 본예산 승인 직후 94년 추경예산 심의를 하면서 전례없이 지방세 50억원의 증액을 기도하다 집행부의 극력반대로 포기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 역시 자신들의 주민숙원사업용으로갈라먹기를 하려했다는 비난을 남겼다.

"물론 의원들이 출신지역의 숙원사업 해결에 앞장서는 것이 나쁘다고만 할수는 없다. 그렇지만 거기에만 신경을 쏟다보니 집행부의 예산편성 내용에대한 심도있는 심의는 뒷전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결국 지자체 전체의 살림살이 심의보다 자신들의 '밥그릇'에만 눈독을 들이는, 앞뒤가 뒤바뀐 의정활동이란 인상을 주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경북도의회 관계자의 비판이다.

이같은 예산심의 자세는 집행부의 투자우선순위(효과성 시급성)의 틀을 흐트러놓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의원들끼리는 각자 확보한 '예산'에 대해 서로 눈을 감아주는 게 불문율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런 '의원사업비'가 경북도의 경우 전체 투자사업비의 10%선을 웃돈다는 것이다. 자연 예산편성 및집행에 대한 의회 본래의 감시 감독활동은 부실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영남대 김시영행정대학원장(지방자치)의 지적. "지방의회의 주요기능중 하나가 예산승인 의결권이다. 그런데 그런 권한을 이용해 표를 얻는 지역숙원사업에만 신경을 쓰는 의원상이 마치 활동적인 것처럼 비쳐지는 것은 후진적이다. 경북도의회 대구시의회같으면 전체적인 대의기관이란 점에 좀더 충실해야한다고 본다"

그런 전체적 관점에서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결정과 집행과정을 견제해야한다는 전문가들의 주문이다. "집행부의 정책심의를 위해 의회는 나름대로 대안제시 능력을 갖추어야한다. 무턱댄 호통이나 고압적인 추궁자세로는 의회의 권위를 세울 수가 없다. 따라서 의원들 각자는 고도의 전문성을갖추지 못하더라도 그같은 정보와 전문적 지식을 활용할 줄은 알아야한다"영남대 김행정대학원장은 의원들의 정책심의 능력은 개인적 노력과 제도적뒷받침이 함께 따라야 가능하다고 충고했다.

경북도의회 3층 자료실. 의원들에게 각종 정보와 지식을 지원하기위해 마련한 이곳은 장서수나 이용자수 모두 한심하기 짝이 없다. 지난 4년간 자료실을 찾은 의원은 한손에 꼽을 정도이며, 3백만 경북도민을 대표하는 의회 도서관이라 이름하기에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일반직원의 소설책 대출이 전부다.

도의원은 평소 길흉사나 챙기고 지역숙원사업이나 해결하면 그만이라는, 빗나간 지방의회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영진전문대 지방자치연구소 김진복소장은 "의원들의 자질향상은 주민에게도일정한 역할이 있다. 지금처럼 의원 전체의 60%이상이 재력있는 지역상공인들로 채워져있는 한 관을 제대로 견제하기란 쉽지않다. 다음 선거에서는 각직능별로 골고루 의회에 진출시켜야 업권보호니 유착이니 하는 폐단을 줄일수 있다"고 말했다. 김소장은 따라서 명실상부 지역의 대표인물을 뽑겠다는주민의식이 자리잡혀야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지방의회가 제구실을 하기위해서는 현재 '자치'를 가로막고 있는제한요소들을 개선 제거해야한다는 점에 동의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실질적 조례제정권의 확보다. 지난해 12월 전국시도의회의장단이 내무부장관에게건의했듯이, 지방자치의 핵심인 지자체의 기구 조직과 정원에 관한 조례제정이 여전히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는 상황에서는 지방의회의 발전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일본은 조례제정이 '법률의 범위내에서'이나, 우리는 '법령의범위내에서'로 한계를 지어놓아 사실상 중앙정부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게했다" 고 영진전문대 김소장은 지적했다.

이처럼 지방의회의 자율권이 크게 제한받고 있는 또하나의 분야는 지방사무의 범위이다. 중앙정부는 지자체 특히 시 군에 대해 스스로 해결능력이 없다는 이유를 들어 대부분의 사무이양(권한위임)을 거부하고 있다. 정재학의원은 "경북도를 상대로 질의를 해보면 '해당사항이 아니다'는 답변에 맥이 풀릴 때가 적지않다"며 "주민과 밀접한 사안들마다 국가사무로 규정해놓고 있어 지방의회가 할 역할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본격적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지방의회가 구태를 벗고 제 역할을다하게하기위해서는 무엇보다 주민들의 뜨거운 '자치열정'이 앞서야한다고강조했다. 〈김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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