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법원 100년 (하)-격동의 현대사... '정치'아닌 '정의' "어려운 선택"

법원의 판결은 해방 50년의 역사를 생생히 기억해주고있다. 격동기 정치적사안은 빠짐없이 법원의 심판대에 올랐으며 종교와 외교문제,여성의 정조까지도 사법부의 심사대상이 됐다. 정치적 사안은 더러 법원으로부터 정당성을인정받기도 했지만 개중에는 부당성이 지적된 경우도 적지않았다.여대생 간음으로 유명했던 박인수사건은 전쟁후 퇴폐적인 사회분위기를 반영해주는 대표적사례로 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재판은 몰려든 방청객들이 법원주변을 에워싸 기마경찰까지 출동하는 소동을 빚은 가운데 무기연기되기도 했다. 서울지법 권순영판사는 공문서부정행사및 혼인빙자 간음죄등으로 기소된 박피고인에게 공문서 부정행사죄만을 유죄로 인정해 벌금 2만원을 선고,석방했다.재판부는 "댄스홀에서 만나 통행금지 시간까지 춤을 추다가 여관으로 가장차 결혼을 한다는 말을 듣고 정조를 제공하였다는 것만으로는 혼인빙자간음죄를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결이유를 밝혔다. 무죄를 선고하면서 재판부가 한 "법은 가치가 있고 보호할 사회적 이익이 있을 때 한하여 그 정조를 보호하여 준다"는 말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건국 후 최초의 필화 사건 주인공인 당시 대구매일신문의 최석채주필에 대한국가보안법위반죄 재판을 담당한 대구지법 김용규판사는 "최주필의 사설은모든행사에 있어 학생동원에 대한 제언을 한 것일 뿐"이라며 무죄를 선고했다. '학생을 도구로 삼지말라'는 제목의 55년9월13일 대구매일신문 사설은이런 내용이었다.

"주미대사의 대구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수많은 중고생들을 동원하여 폭서에도 불구 노변에 서너시간씩 도열케하여 면학에 지장을 주었다. 국경일도 아닌 다른행사에 교육을 위한 환경의 고려도 없이 인원을 채우기위해 지령한장으로 손쉽게 동원하는 예를 많이 보았다. 대외적시위라면 외국인이 볼때 한국국민의 조숙에 놀라기보다는 관제동원임을 먼저 깨닫게 할것이요,국내적궐기라면 대회의 효과에 있어서 학부형들의 반감이 먼저 그 대회를 욕할것이니 그러한 동원방법은 삼가야 할 것이다"

비구.대처승의 오랜 종단분규는 급기야 60년의 법원 난입사건을 빚고 만다.전국 사찰에서 대처승을 축출하자는 사찰정화위원회의 결의에 대해 대처승측이 결의무효 확인청구 소송을 제기,대법원이 대처승측에 승소판결을 함으로써 빚어진 사건이다. 비구승 4백여명이 대법원에 몰려들어 대법원장실에서 할복자살을 기도하고 법원청사를 부수는등 소란을 피운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는 "대부분 수도자들인데다 잘못을 뉘우치고 있으므로 관대한 처분을 한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79년8월 서울민사지법 제16부가 내린 신민당 총재단 직무집행정지 가처분결정은 유신말기 정계는 물론 나라 전체를 뜨겁게 달구었다. 신민당 지구당위원장 조모씨등이 "전당대회에서 김영삼총재가 재적대의원의 과반수보다 2표가 많은 수로 당선될 당시 대의원중 25명이 무자격이므로 총재선출은 무효"라며 가처분을 신청하자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가처분결정을 내리면서 "정당해산에 관하여서만 헌법위원회의 권한에 두고있는 우리법제하에서는 통상의 민사사건과 마찬가지로 법원의 사법심사 대상이 된다"며 "정치문제라는 이유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을 물리쳤다.

관광사업으로 급부상하던 명성그룹이 은행을 이용,1천66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사채를 조달한 충격적인 사건이 83년 일어났다.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자해당 은행의 수기통장 소지자들이 예금반환을 거부하는 은행측을 상대로 정기예금반환청구소송을 냈다. 1백56건에 이른 소송의 쟁점은 '은행과 전주들사이에 과연 예금계약이 성립되었다고 볼 것이냐'에 있었다.대법원은 "예금자들이 은행대리의 예금계약 의사표시가 진의가 아닌것을 알수있었을 것으로 보아 예금계약은 무효"라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특히 "예금주들이 금융기관을 통한 금융질서를 어지럽히면서까지 높은 이자만을 탐내어비정상적인 방법을 이용했는데도 그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다며 이익을 누리게 하는 것은 손해의 공평한 분담이라는 측면에서 합당치 않다"고 판결,법의보호를 받을 수 있는 행동의 기준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했다.84년의 망원동 집단 수해사건의 피해자 21명이 청구한 손해배상 소송은 소멸시효 완성을 불과 1주일 앞둔 87년에야 1심판결이 선고됐다. 결과는 서울시의 패소였다. 그러자 관망하던 피해주민들의 집단 소송신청이 쇄도했다. 2만4천명이 서울지구 국가배상 심의위원회에 배상신청을 해왔고 2천3백여 가구가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서 피해주민들은 재산상 손해배상 대신수재로 인한 주민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를 요구했고 법원은 위자료지급을 명령했다. 이 사건 판결은 "천재지변의 경우에도 영조물의 설치및 관리상의 하자로 인한 관리청의 책임을 명확히 했다"는 점에서 실체법상 적지않은 의미를 가졌으며 소송과정에서 당사자의 숫자가 워낙 많아 집단소송제도의 도입 필요성을 제기한 계기가 됐다.

83년 어린이날 수도권에 때아닌 경계경보가 울려지게 한 중국민항기 피랍사건은 미묘한 외교적문제를 던져주었다. 정부는 당시 국교가 없던 중국측과협의를 거쳐 피랍항공기와 승객등을 곧바로 송환했으나 납치범들은 대만으로의 망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검찰은 그들을 우리 항공기 운항 안전법, 출입국관리법등을 적용,구속기소했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납치범들은 줄곧 재판 관할권 문제를 제기했으나 법원은 "항공기 운항안전법 규정과 항공기 불법납치를 억제하기 위한 협약등을 종합할 때 항공기 등록지국에 원칙적인 재판관할권이 있지만 항공기의 착륙국인 우리나라에도 재판 관할권이 생겨 외국인의 국외범도 모두 적용대상이 된다"고 판시,유죄를 인정했다.89년초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은 서울시내 유명백화점들이 물건에 붙인 정상가격을 훨씬 높게 표시해두고 이를 할인 판매하는 양 허위의 광고를 함으로써 판매고를 올리는 변칙세일 수법을 사용했다며 이들을 사기혐의로 고발했다. 대법원은 백화점 실무자들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사술의 정도가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상술의 정도를 넘은 것이어서 사기죄의 기만행위를 구성한다"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파기했다. 이 판결은 유통업체에 대한 사회적 신뢰에 따른 책임을 엄격히 하고 나아가 이런 신뢰를 훼손당한 고객의 정신적 고통까지 배상을 명한 점에서, 소비자 보호차원에서 획기적인 의의를 가진 것으로 평가됐다.

의붓아버지에 의해 12세때부터 성관계를 강요당해 온 대학생 딸이 남자친구와 함께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은 성폭력 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종을 울리는 한편 94년4월부터 시행된 성폭력범죄의 처벌및 피해자 보호등에 관한법률의 제정 과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서영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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