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들은 탑을 하늘과 땅을 잇는 소중한 건축물로 생각했다. 극락정토, 불국의 염원을 돌조각하나하나에 담아냈다. 신라의 탑은 바로 이 땅의 모든 진실과 인간의 정신을 하늘로 끌어올리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남산에 세워진 수많은 탑은 이처럼 신라인의 순수한 숨결을불어넣은 숭고함의 대상이었다. 남산의 탑은 하층기단이 생략된 것이 많다. 평지에 세운 탑과 달리 산이나 바위를 하층기단으로 여기고 수미산 위에 하늘누각으로 탑을 세우려는 의도였을까? 남산의 탑은 하늘과 맞닿은 가공(架空)의 탑이다.
남산 각 골마다 흩어져 있는 탑은 모두 71기. 포석골의 8기를 비롯 탑골 6기, 선방골과 왕정골이각 5기,용장골 장창골 국사골 각 4기로 그중 많이 남아 있다. 최근들어 창림사지 3층탑과 천룡사지 3층탑등 11기만 복원됐고 나머지는 아직도 여기저기 상처를 입은채 허물어져 나뒹굴고 있는폐탑이다. 인적마저 끊긴 외딴 곳에 아무렇게나 방치된 폐탑들은 무심한 세월과 사람을 원망하는듯 하다.
허물어진 탑의 흔적을 찾기 위해 포석골로 들어 늠비봉으로 오른다. 남산 골골이 서로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골깊은 포석골은 또 다른 얼굴이다. 계곡사이로 왕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일 정도로 툭트인 골이지만 그 속내는 한마디로 별천지다. 낮에도 부엉새가 우는 험하고 깊은 골이라 하여 부엉골이라 했다는데 지금은 부흥골로 부르고 있어 이상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산길을 따라꼬불꼬불 오르다보면 발아래로 남산팔경의 하나인 포석암반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가뭄으로 계곡물이 거의 말라있지만 골을 따라 마치 쏟아져내리듯 거대하게 펼쳐진 암반이 신기하기만 하다.머리를 들면 깎아지른듯한 바위 벼랑인 부엉더미가 까마득히 병풍처럼 걸려있다. 골입구에서 늠비봉까지는 1.2㎞.남짓. 전망대에서 흘러내려 큰 늠비, 작은 늠비로 불리는 두 여울사이에 삼각점처럼 불쑥 솟아 있는 바위산이 바로 늠비봉이다.
늠비봉 석탑은 신라인의 염원을 듣지못한채 수천,수백년을 넘어져 있다. 둥그스름한 바위면을 정교하게 잘라내고 다듬어 그 위에 세운 상층기단의 탱석과 면석 일부만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뿐옥개석과 갑석,우주(隅柱)등 탑신부는 흩어져 탑주변에 널려 있다. 그나마 탑재들이 온전한 형체로 남아 있어 얼기설기 꿰맞춰 세우면 늠름한 석탑이 다시 설 것만같은 생각이 든다. 탑재들을봐서 3층석탑인 이 폐탑은 다듬지 않은 석재를 보충해 자연과 인공을 적절히 조화시킨 기단을 볼수 있다. 향토사학자 윤경렬씨가 "이 탑을 박물관등에 옮겨 놓으면 미완성의 탑이지만 이 봉우리위에서는 완성품"이라고 표현할만큼 남산의 자연과 떼놓고는 생각할 수 없는 유물이다.이 석탑에서 10여m 동쪽으로 올라가면 사리탑 1기가 오솔길가에 버려져 있다. 신라하대의 소박한고식 사리탑으로 감은사 삼층탑에서 발견된 금동사리함과 많이 닮았다. 기단석과 옥신은 각각 떨어져 비스듬히 누워 있고 기단석 중앙에 팬 사리공(舍利孔)에는 빗물마저 고여 있다. 이 소박한탑은 원래 늠비봉 삼층석탑옆에 있었는데 일제때 옮겨가려고 길옆에 옮겨놓은 것으로 전한다.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훼손한 일인과 이를 아직까지 방치하고 있는 우리가 결코 다르지 않음을새삼 느끼게 된다.
골마다 만나게 되는 수많은 남산의 폐탑. 이제는 옥개석하나, 돌기둥하나라도 다시 수습해야한다.탑이 다시 일어서는 날 옛 신라인들의 불국정토의 꿈은 세월을 뛰어 넘어 면면이 이어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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