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청개화성

연꽃이 피는 계절이 돌아왔다. 차창밖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연꽃송이가 더없이 고상해 보인다. 생각같아서는 첨벙 뛰어들어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며 꽃을 들여다 보고 싶다.

그러나 옛 선비들은 그렇지 아니 하였다. 연꽃이 피면 통문(通文)이 돌게 된다. 통문을 받아든 선비들은 이른 새벽에 술 한 모금을 허리춤에 꿰차고 연못가로 모인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안개가 자욱한 연못둑에 모여든 선비들은 소리없이 배에 오른다. 그리고는 연못 한복판으로 조용히배를 저어간다. 연잎이 많은 곳에 배를 멈추고는 더 없이 진지한 자세로 눈을 지그시 감고 귀를기울인다. 연꽃잎이 벌어지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이다.

연꽃은 안개가 걷힐 무렵, 고고한 소리를 울리며 꽃잎을 벌린다고 한다. 어떤 소리가 날까?'부가각'하며 벌어질까?

모르기는 해도 연꽃잎 벌어지는 소리는 새로이 한 우주가 열리는 소리임이 분명하다고 생각된다.일찍이 향토의 이호우(李鎬雨)시인도 그의 시 '개화(開花)'에서 노래하였듯이 꽃잎이 한 잎씩 벌어질 때마다 새로운 하나의 하늘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옛 선비들은 이 세상의 수많은 소리 가운데에서 꽃잎 벌어지는 소리를 들을 줄 알아야 진정으로풍류를 안다고 하였다. 이른바 청개화성(聽開花聲)의 풍류이다.

따지고 보면 이 세상에 소리 아닌 것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기에 잘 듣고 잘 보라고 귀와 눈은둘 있고 말은 되도록이면 적게 하라고 입은 하나밖에 없다고도 하지 않는가.

옛 선비들의 듣기만 하는 지혜와 참을성이 더욱 우러러 보인다.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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