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출판도시

"김언호〈한길사대표〉"

여러 견해가 있겠지만, 한국 현대사 또는 현대한국사회를 바꿔 놓은 두가지를 들라고 하면 나는울산공업단지와 경부고속도로를 들고 싶다. 우리의 경제사회적 생활은 물론이고 정신적 문화적질량의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데에 울산공단과 경부고속도로는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고 지금도 그 역할과 기능은 더욱 중요시되고 있다.

한국사회의 산업화에 그것은 상징적 실체일 수가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의 산업화는 물론 다른여러요인이 가져오는 총체적 의미로서의 사회발전이겠지만 사회경제의 기반시설 또는 사회간접자본으로써 경부고속도로를 어려움을 무릅쓰고 건설했다는 것은 우리의 긍지가 되고 있다. '박정희'라는 정치권력자에 대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양한 평가가 있지만, 적어도 울산공단과 경부고속도로의 건설을 일찌감치 진두 지휘했다는 사실을 나는 그의 최대의 공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하나의 세기를 보내고 새로운 세기 21세기를 맞고 있는 오늘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 새로운질량의 문명전개에 상응하는 국가사회의 토대 또는 기반시설을 구축하는 일일 것이다. 나라와 사회 개인과 민족의 새로운 살림살이에 상응하는 주춧돌과 기둥을 점검하고 건설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라와 사회 개인과 민족의 삶의 질량을 새롭게 조망하고 끌어 올릴 수 있는 인프라스트럭처를 새롭게 구축하는 일이야 말로 세기말의 문명사적 전환기에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다.이같은 작업은 물론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철학적·문명적 비전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경제적일원주의를 넘어서서 이제 문화를 어떻게 일으켜 세울까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과제로 우리에게주어지고 있다.

왜 문화인가? 문화로 우리가 지난 시대에 일으켜 세운 경제를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지않고는 경제 그 자체도 존재·발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질 낮은 경제로 21세기를 살아가기는어렵다. 요컨대 질 높은 경제성장은 문화라는 인간과 사회에 훨씬 본원적인 요소로 뒷받침되지않고는 불가능한 문명적 시대가 우리앞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21세기는 분명 문화의 시대일 것이고, 경제도 문화라는 시각에서 모색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엄연한 현실속에 우리 자신이 던져져있기 때문이다.

지금 출판인들이 서울 서북쪽 한강변(파주)에 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의 건설을 준비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7년이나 걸려서 추진되어 오던 건인데 드디어 조만간 착공을 하게 된다. 이 출판도시에는 책을 기획하고 만드는 출판사와 그것을 제작해내는 인쇄·제책시설, 그리고 완전하게 만들어진 책을 전국의 서점과 독자들에게 배포하는 유통시설이 입주하게 된다. 말하자면 문화쪽의 울산공업단지와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한 시대 한 사회의 책의 문화는 그 시대 그 사회의문화의 총체적 수준의 반영이고 그렇게 이루어진 책의 문화는 다시 그 시대 그 사회의 총체적 수준을 끌어올리고 진동시키는 힘과 논리를 갖는다.

책의 문화를 일으키는 일은 우리 사회의 문화와 예술, 교육과 학문은 물론이고 경제와 과학을 일으키는 일과 직결된다. 책을 만들고 책을 읽는 행위는 국가사회의 총체적 발전을 담보해주는 자원이라고 단언적 으로 말할 수 있다.

21세기는 정보와 지식의 시대다. 정보와 지식의 가장 본원적인 창출매체로서 책의 문화는 존재한다. 이같은 책의 문화를 창출해내고 유통시키는 인프라로서 우리 출판인들은 출판도시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는 다른 말로 하면 지력(知力)이다. 21세기는 지력을 가진 개인과 사회와 국가가 세상을 장악할 것이다. 지력의 창출공간으로서 우리는 파주출판문화정보산업단지가 21세기 한국사회에서 획기적인 기능을 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고대 로마가 어떻게 하여 세계제국으로 군림하게 되었는가, '길'이라는 인프라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로마가 구축한 인프라 그리고 국가 사회적으로 구축한 시스템을 의미한다.

모든 것은 책으로 통한다는 말은 21세기에는 더욱 보편타당한 명제가 될 것이다. 지식과 정보를본원적으로 창출해내는 책을 통해서 그리고 그것이 담아내는 정보와 지력을 통해서 나라와 사회,개인과 민족은 늘 새롭게 일어설 수 있다. 파주의 출판도시는 이같은 책의 문화를 우리사회의 인프라로 구축하자는 이론이자 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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