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대구금융100년(32)-영남종금(2)

영남투금의 잦은 경영진 교체 풍파는 계속됐다. 86년1월 제4대 회장으로 감사원 출신인 류응의씨가 취임했지만 6개월을 넘기지 못했고, 학자 출신인 제5대 김정욱회장도 영남대에서 벌어진 재단운영자 박근혜씨 퇴진운동 여파가 회사까지 번지면서 88년11월 회사를 떠나고 말았다. 회장 없는체제는 89년3월 류창우 제6대 회장 취임때까지 계속됐다.

류회장은 취임후 오랜 숙원인 사옥신축 이전 계획을 본격 추진했다. 영남투금은 대구시 중구 동인동2가 11번지 5백57평의 신축이전 부지 지분 반을 재단에 매각했다. 업무용 부동산 보유한도초과를 막기 위해서였다.

영남투금과 재단이 공동 건축하게 된 신사옥은 한차례 유찰 끝에 (주)서한에 낙찰되면서 90년6월첫삽질에 들어갔다. 영남투금은 2년여뒤인 92년10월5일 지하3층, 지상10층 연면적 2천9백20평의신사옥으로 이전한다.

신사옥 이전 직전인 92년8월11일 대구은행 전무이사를 역임한 강경헌 현 사장이 4대사장으로 취임했다.

강사장은 창사 이래 최대 과제 중 하나인 기업공개를 적극 추진했다. 기업공개는 원래 94년 완료예정이었지만 정부의 요건 강화와 종합금융사 전환 등 환경변화로 지연되다가 95년2월18일 성사된다. 상장사로 거듭난 영남종금은 자본금을 3백75억원으로 늘렸다.

93년12월 정부의 지방 단자사 종합금융사 전환방안 발표가 있자 영남투금도 종금사로의 전환 작업을 시작한다. 종금업무개발실을 신설하고 전문인력을 스카우트하는등 준비작업 끝에 95년10월27일 종금사 전환 본인가를 취득한 뒤 영남종합금융으로 상호를 바꾸며 대구 최초의 종금사로 출범한다.

95년5월 주총에서 상만달 부회장이 퇴임하고 강사장이 재선임됐다. 업종전환 1년을 넘긴 96년3월결산때 영남종금은 여수신 1조원을 돌파했다. 기존 단기금융업무 외에도 국제금융·리스·증권업무·투자신탁업무의 영업실적이 큰폭으로 증가했다.

최근 영남종금은 대기업에 의한 M&A(기업인수합병)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올해 8월 영남학원 재단이사회에서 영남종금 매각안건이 상정됐지만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 보류된 상태. 또 강사장이 재단측에 M&A 당위론을 편 사실이 알려지면서 발언배경에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우여곡절끝에 전문경영인 체제를 확립한 영남종금은 자금의 안정적 운영등으로 내실을 다진것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국내 다른 종금사들처럼 기업 연쇄도산과 극심한 경기침체, 금융환경 변화라는 파고를 만나 이에대한 효율적이고 능동적인 대처를 숙제로 남겨놓고있다.

〈金海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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