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정많은 구두쇠 김숙희씨

김숙희씨(37.대구시 서구 평리동 광명아파트)는 '예쁜 구두쇠', '인정많은 구두쇠'이다. 아낄때는혀를 내두를만큼 아끼지만 주위사람들에게 넉넉한 인정도 베풀 줄 아는, 지혜로운 자린고비다.신세대주부같은 깔끔한 인상과는 달리 그의 집엔 온통 낡은 구닥다리뿐이다. 모두가 10년전 신혼때의 살림살이들. 그나마 싱크대와 거실의 앉은뱅이 탁자, 아이들방의 책상 두개중 하나는 누가버린 것을 주워와 손질한 것이고 식탁과 의자도 이웃집것을 물려받았다. 딱 하나 바꾼 것은 냉장고. 결혼당시의 1백80ℓ짜리를 작년에 4백ℓ로 바꿨다. "냉장고를 가져온 아저씨가 마치 북한에온것 같다고 농담하시더군요"

남들은 새아파트에 입주하면서 멀쩡한 도배지며 바닥을 뜯어내고 수백, 수천만원씩 들여 새로 장식한다지만 김씨집은 그런 세태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9년동안 이집에 살면서 한번도 돈주고 실내장식을 한적이 없다. 낡은 벽지를 김씨는 수성페인트에 수채화물감을 섞어 색칠을 했다. 연하늘, 연분홍 등으로 색깔을 달리 칠하기도 하고 대학전공(유아교육학)을 살려 직접 그린 과일그림을 유치원처럼 붙여놓기도 했다.

이 집엔 레이스가 하늘거리는 커튼도 없다. 안방과 거실, 아이들방엔 1개 1만원짜리 블라인드 두개씩을, 부엌엔 장당 3백원짜리 연녹색과 연노랑 한지 넉장으로 만든 미니커튼이 전부이다.곳곳에 뒹구는 종이컵, 버려진 노끈 등은 두아이들(10세, 6세)의 만들기재료로 훌륭하고 광고지는연습장으로, 메모지로 쓴다. 아이들 신발을 사주러 가게에 갈때면 가게주인은 아이들 신발이 너무낡은데 놀라고, 버려도 시원찮을 헌신발을 놀때 신긴다고 다시 가져갈때 두번 놀라게 된다.멋부린듯한 용모를 보면 외양가꾸는 씀씀이가 꽤 될듯한데 실제로는 그것도 아니다. 화장품은 동생이 쓰다준 것이거나 할인코너에서 얻어온 샘플 등을 주로 쓴다. 눈가의 잔주름탓에 얼마전 1만5천원짜리 아이크림을 처음으로 샀다. 1년치 화장품값은 통털어야 5만원정도, 국산 기초화장품2~3병값밖에 안된다. 첫아이 낳고부터는 미장원도 다니지 않는다. 자기머리는 늘 직접 자르고 아이들 머리도 요즘들어 가끔씩 미장원에 보내지만 자기가 잘라줄 때도 많다.

옷도 비싼 것은 하나도 없다. 고물창고라 부르는 낡은 장롱안의 겨울옷들중 백화점에서 산 것은인조털이 달린 캐주얼한 토퍼뿐이다. 스무살때 맸던 스카프나 10여년전 산 벨트도 여태 애용하고있다. 5년전 5천원주고 산 면스커트의 지퍼가 고장나 세탁소에 수선을 맡겼더니 아저씨가 돈을안받겠다고 했다. 이유인즉 "돈을 받기에는 옷이 너무 낡고 보잘것 없다"는것.남편의 월급 1백40여만원중 90만원을 저축하고 자신은 베이비시터로 월 50만원씩을 번다. 베이비시터는 근 10년간 계속해오는 그의 직업이기도 하다.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아둥바둥하는 구두쇠는 밉상이지만 김씨는 그렇지가 않다. 별미를 만들면이웃을 불러 같이 먹고, 동네아이들을 집에 데리고와 음식해 먹이고, 우체부아저씨를 불러 차를끓여주나하면, 허름한 차림의 낯선 노인들에게 맛있는것 사잡수시라며 몇천원씩 쥐여주는 인정많은 구두쇠다. 불쌍한 사람을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때문에 종종 오해를 받기도 한다. 이웃의 50대주부 송홍연씨는 "무조건 아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리분명하고 남과 나눌줄 아는 백점짜리주부"라고 칭찬했다.

'나는 빛바랜 것이 좋더라''행복은 내가 만드는것'…. 김씨가 직접 써 벽에 붙여놓은 글귀들이다.〈全敬玉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