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일본의 책방거리

일본을 다시 방문하게 되었다. 우리 출판사가 이번에 펴내게 되는 '고야'(전4권)의 작가 홋타 요시에(掘田善衛·79세)선생을 예방하는 한편 최근의 일본출판 사정을 살펴보기 위해서다. 스페인의위대한 미술가로서 서양미술사의 거목인 고야의 시대와 그의 예술세계를 놀라운 필력으로 논파한대작 '고야'를 진행하면서 나는 책을 내기 전에 저자를 만나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도쿄의 시나가와(品川)역에서 열차편으로 한 시간 남짓 남서로 달리면 일본 역사의 한근거였던가마쿠라(鎌倉)에 이르고, 그보다 한 정거장 더 가면 쥬시(逗子)라는 인구 10여만의 작은 항구도시가 나오는데, 홋타 선생은 이 도시의 바닷가 산꼭대기쯤에 살고 있다. 작가 홋타 요시에는 우리에게 여느 일본지식인 또는 문학가와는 사실 사뭇 다르다.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 의장을 지냈고, 이 작가회의가 수여하는 로터스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제3세계 및 식민지적 현실에 비상한관심을 가지는 한편 그곳을 두루 여행하고 그것에 관한 수많은 작품들을 써냈다. 두어 시간의 인터뷰에서 나는 인류적 양심과 사회적 진실에 아직도 진지한 관심을 갖고 있는 한 원로작가의 풍모를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응접실에는 한국의 옛 궤짝이 놓여있다. 그 속에 이런저런 고서들을 넣어놓았다. 베트남전을반대하는 연대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던 그는 베트남에 참전했다가 탈출한 한 한국인을 두어 달 동안 보호해주기도 했다. 한국의 전쟁고아가 미국으로 입양했다가 베트남에 파병되는데, 결국 그곳을 탈출한 이 고아 청년을 자기 성씨가 김씨라는 것만 알지 본디 이름을 잊었다는 것이다.그후 그는 모르코인가 어디로 갔다는데, 나는 이 사람을 찾을 수 있느냐고 했더니 홋타선생은 모른다고 했다. 홋타선생은 이 전쟁고아의 운명적 생을 주제로 '교상환상'(橋上幻像)이라는 장편을썼다. 이미 1952년에 '광장의 고독''매국노'등으로 일본의 최고 권위있는 아쿠다가와상을 수상한바 있는 그가 일본적인 세계를 뛰어넘어 인간의 보편적인 역사와 사상을 주제로 삼는 작품들을계속 발표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한 그의 작가적 실천에서 드러나고 있다. 할 것이다. 그는1991년부터 94년에 걸쳐 프랑스의 위대한 사상가 몽토뉴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그의 시대를 파헤친 또 하나의 거작 '미셀, 성관(城館)의 사람'3부작을 발표했다.

그는 한국을 아직 방문한 적이 없다. 경주에는 가보고 싶지만 가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일제의한국식민통치를 결코 동의할 수 없고, 그것이 끝났다고 해서 그곳을 방문하는 따위가 아무래도 가당찮다는 것인 듯하다. 한국의 유신시대 때 김지하 시인의 구축운동에 나서기도 한 그는 '고야'를쓰고 나서 스페인 등지에서 10여 년을 머물면서 인간과 역사에 대해 모색하기도 했다.오는 일본이 세계를 주도하는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와 응당한 논리와 인식체계를 갖고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무엇이 오늘의 일본을 가능하게 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우리는좀더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

나는 일본의 힘의 원천을 일본의 서점거리 간다(神田)에서 상징적으로 다시 확인하게 된다. 저 수많은 각종의 서점들과 출판사들이 일본의 근현대사를 만들었고, 오늘의 일본인과 일본사회를 뒷받침하고 있다고 나는 단언하고 싶다. 아니 그 서점들에 꽂혀 있는 각종의 책들, 그 대중서들과전문서적들이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엄청난 질량으로 신간이 간행되고 있다. 세계의 모든 나라에서 간행되는 중요한 책들은 그대로번역된다. 전문적인 책들일수록 더 적극적으로 간행된다. 주요출판사들은 각종의 국내 저작들을힘있게 기획해내고 있다. 간다의 각종 전문고서점들을 제발 한번 들어가서 자세히 살펴보라. 수십만원 수백만원 하는 고서들이 즐비하다. 일본고서뿐 아니라 서양의 고서들도 가득하다. 지독히도전문적인 책들을 주제별로 갖춰놓고 있다.

일본이란 요컨대 책 만들고 책 읽는 사회다. 책 만들고 책 읽는 것이 바로 일본민족과 일본국가의 원천이다. 홋타 요시에와 같은 거물급 저술가도 바로 이런 조건 속에서 존재하게 된다. 다시상투적인 이야기가 되겠지만, 우리가 일본을 따라잡고 못 잡고는 우리의 책문화에 달려 있음을다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21세기에는 더욱 그럴 것이다.김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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