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구름, 빗속에 갇혔던 지리산이 서서히 몸을 드러낸다. 산을 휘감던 구름들이 빨려 올라가면서 끝도 없이 펼쳐지는 능파(稜波)들. 천왕봉에서 내려다 본 지리산은 웅장하기만 하다.땅을 솟아 온갖 세파를 견디며, 인간을 비웃기라도 하듯 수많은 세월을 견뎌온 산국(山國).가는길 마다 폭포며 소(沼)를 두고, 암괴를 이고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힘. 백두산에서 출발해 뻗어 내린 백두대간(白頭大幹)의 끝자락에서 한반도를 떠받치고 있는 형세가 역사(力士)를 연상케한다.
용솟음치는 계곡물, 멍에를 짊어진 소등을 연상케 하는 굵은 능선, 산을 뒤덮고 있는 울창한수림들이 경외감으로 몸을 감싼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마치 신화속의 소가 누운듯한 자세를 취하는 지리산세. 노고단-반야봉-토끼봉-칠선봉-촛대봉-천왕봉을 잇는 1백10여리, 1천5백~1천9백15m에 이르는 고봉을줄줄이 엮어 하늘을 이고 있는 어머니품같은 산이다.
지리산은 전남·전북·경남의 3개도에, 남과 북으로 섬진강 엄천강 경호강을 경계로 하여보듬어진, 둘레만도 장장 8백리가 넘는 장엄한 산이다. 무려 1억3천만평의 넓이에 함양 산청하동 구례 남원등 5개군 13개면에 걸쳐 있고 1천m가 넘는 20여개의 큰 봉우리와 85개의 크고작은 봉우리가 한데 어울어진 거대한 산괴다.
골마다 진경(珍景)이요, 능마다 감탄을 자아낸다. 매년 휴가철이면 수많은 사람들을 보듬어쉬어가게 하는 곳. '아름답다'는 말 이외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빼어난 산이다.화엄사 연곡사 천은사 실상사…. 골마다 고찰을 두고 석불, 석탑이며, 비(碑), 루(樓), 대(臺)며 각종 문화재를 안고 있다. 달궁, 심원, 유평, 칠선, 뱀사골, 한신, 휴천, 거림, 대성 산이갈라 '터진' 곳에는 어김없이 수려한 계곡을 낳고, 그 계곡 양편으로 녹음이 우거져 가을이면 불타는 듯한 단풍을 풀어 놓기도 한다. 고원에는 꽃을, 봉에는 고사목을 두어 티끌같은인간사를 비웃듯 선경(仙境)을 이룬다.
그러나 지리산은 자연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 사람살이와 등진 자연속의 산이 아니다. 인정(人情)을 품고 사람과 아픔과 고통을 함께 느껴왔다. 골마다 여전히 그 한들은 살아움직이고있다.
지리산 기슭에선 '아기장수 우투리'의 전설이 있다. 평민영웅 장수 우투리가 탯줄을 억새로끊고 세상에 태어나 세상의 변혁을 꿈꾸다 결국 어머니의 고발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얘기다.
그 우투리처럼 지리산은 변혁의 꿈이 움트던 곳이다. 신라말기(896년)에는 붉은 바지 농민군(赤袴賊)이라 불리는 세력이 지리산에서 생겨 경주까지 도모했으며, 조선시대에도 각종 민란과 농민항쟁의 진원지로 자리잡았다. 아직까지 사그러들지 않는 한으로 남는 것은 6·25를거치면서 겪은 좌우익의 피비린내나는 대결의 장이었던 기억이다.
한많은 우리 삶이 고스란히 묻혀 있는 지리산.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숨긴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전히 지리산(知異山)이란 이름으로.
댓글 많은 뉴스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