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굴욕외교, 책임물어야

일국의 외교및 통상업무를 총괄하는 부서의 책임자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한·러 2차 외무회담에서 참사관 맞추방사건으로 빚어졌던 외교위기를 일단 봉합하는데성공한 것으로 발표됐다. '정보담당외교관의 활동이 양국정보협력협정의 범위를 벗어나지않기로 한다'고 합의함으로써 수습되는 듯했다.

그러나 회담직후 발표된 합의내용중 핵심문제라 할 수 있는 올레그 아브람킨 주한(駐韓)러시아 참사관의 재입국 문제가 '허용'쪽으로 합의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난 것이다. 일단 추방된 외교관에 대해 상호주의의 배려없이 재입국을 수용한 것은 외교교섭에서 있을 수 없는일이거니와, 우리측의 명백한 외교적 패배임이 분명하다.

외교통상부장관등 고위관계자들이 러시아참사관의 재입국을 허용한 바 없다고 했다가 이틀만에 허용사실을 실토한 것은 국민을 우롱한 처사다. 지난 28일 회담직후 러시아외무장관은자국참사관의 한국재입국이 허용됐다고 발표했고, 우리측은 아니라고 부인하더니 결국은 허용사실을 밝힘으로써 국민들을 갖고 논 셈이다. 일시적인 질책을 모면하려고 감추다가 더큰 비난을 받게 된 것이다.

물론 외통부장관 혼자 잘못은 아니다. 처음부터 한·러 관계를 다루는 주무부서인 외통부와청와대·안기부간의 정책조정이 원만하지 못했다는 점은 벌써 드러난바 있다. 첫단추를 잘못 끼우게 되니까 계속 수세에 몰리고 기조(基調)를 잃어버려 우왕좌왕하다 노련한 러시아의 외교전술에 완패한 것이다.

러시아참사관의 재입국 허용이 치욕적인 외교실패이기도 하지만 양국주재정보외교관들이 정보협력협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활동을 할 수 없도록 합의한 점은 사실상 우리의 참사관이러시아에서 불법활동을 한 사실을 간접시인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추방사태초기에 외교문제는 외교통상부에서 주도적으로 풀어나가는 입장이 아니고 청와대·안기부가 내부적으로주도하는 인상을 준 점도 이번 기회에 검토하고 넘어가야 할 과제다.

결국 우리 참사관은 스파이혐의로 추방당하고 러시아참사관은 재입국하게 됨으로써 우리의추방조처가 잘못이었음을 국제외교가에 널리 알린 결과다. 국가위신추락에 대한 응분의 책임 추궁이 있어야 한다. 관계부서실무자들사이에 배타적 분위기가 있었다면 이역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국민을 우롱한 거짓말에 대한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한다. 김대중정부의 신뢰회복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오랜 외교역사를 갖고 있는 러시아와의 외교교섭에 대비, 체계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도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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