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송편빚는 마음만은 "넉넉히"

가을정취와 함께 추석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지만 마치 '타임 머신'을 60, 70년대로 되돌린 것처럼주머니가 얇아지고, '빈손 귀향'이니 '가족대표 귀향'이니 해서 고향을 찾는 마음이 무거워졌다.'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던 추석 특유의 풍성함과 넉넉함을 찾아보기 힘든 올해여서 웬만하면 크고 좋은 놈으로 올리던 제수도 놀부식으로 간략하게 장만하거나 줄이는 집들이 많다.

서양의 추수감사절처럼 온 여름내 땀흘린 끝에 만곡이 무르익어 풍성한 수확이 다가옴을 반기는올 추석에는 편의성만 좇아 그동안 멀리했던 시식(=송편.松餠)을 빚으며 오손도손 가족의 정을 나눠보자.

4대가 함께 사는 경북대 수의학과 탁연빈교수댁(60.대구시 수성구 범어2동 155의9번지)은 추석에'특이하게' 떡제사를 모신다. 성주지방의 풍습을 따르고 있는 광산 탁씨 12대 종손인 탁교수네는추석 전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제수상에 메 대신 진설하는 떡(송편)을 빚는다.탁교수의 어머니 여순이여사(89)와 아내 박윤자씨(51.대구시여성회관 상담실장)가 평생 닦은 보기좋은 솜씨로 예쁜 송편을 빚어 솔잎을 깔고 쪄내는데 며느리 원준희씨(33)와 손주 권용이(6) 손녀주현(3)이가 먼저 달려들어도 말리지 않는다.

언젠가 손주들도 자라면 떡빚던 손을 멈추고, 별 말씀이 없으신 할머니의 주름진 손에서 도깨비방망이처럼 뚝딱뚝딱 신기하게 빚어져나오던 송편과 수염 허연 할아버지, 연로하신 할머니를 떠올릴 것이다.

대구시 동구 백안동에 사는 나정희씨(52.사단법인 중앙부인회 이사) 역시 종부는 아니지만 시어머니 서말선여사, 딸 셋 등 3대가 둘러앉아 한가위처럼 풍성한 맘으로 반달 송편을 빚는다. 쌀가루를 체로 두어번 내려 부드럽게 한 뒤, 소금을 알맞게 넣고 반죽을 한뒤 오래 치댄다. 반죽에 끈기가 생기고 매끈해지면 송편속을 준비한다. 풋콩은 소금간만 하고, 깨는 소금과 설탕, 팥소에는 소금과 설탕 계피가루를 약간 넣어 맛을 낸다. 나여사네는 붙지 말라고 독특하게 짚을 깔고 송편을쪄낸다.

어릴때부터 "송편을 예쁘게 빚어야 고운 딸을 낳는다"는 말을 흘려듣지않고 마음모아 만들던 나여사의 송편빚기는 제법 수준급으로 속도감이 넘치는데 올해는 다른 제수장만은 다소 줄이더라도송편은 3되쯤 넉넉하게 준비하여 나눠 먹을 작정이다.

영덕이 고향인 신근영씨(대구시 중구 삼덕1가 48번지)의 본가에서는 제수상에 전류(지짐이)를 쓰지않고 어물을 풍성하게 준비한다. 수산물이 풍성하고 채소류가 귀한 바닷가의 특성에 맞춰 제수상차림도 내륙지방과는 확연하게 달라진 것이다. 떡편틀처럼 큰 제기에 각종 어물류를 풍성하게올린 제수상은 한해의 풍어를 비는 마음과 조상의 음덕으로 후손들의 삶이 풍성하게 열매맺기를기대하는 마음이 가득하다.

이동현씨(대구시 수성구 범어1동 궁전맨션)는 몇년전부터 서울 사는 아들네가 대구로 귀향하는것을 힘들어하자 서울 아들네로 상경하고 있다. 개신교인인 그는 제사를 모시지않도록 규정한 교회법 보다 늘상 제사를 모시던 집안의 풍습을 따르면서 집안의 화목과 우애를 다진다. "믿음도중요하지만 집안의 단결과 화합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이씨는 대신 유일신을 모시는 교회법을 따라 지방이나 사진을 걸지는 않는다.

민속학자 김택규교수(향토문화연구회 대표)는 "가가례(家家禮)라고 집안마다 추석을 맞는 예법은다 다르지만 IMF에 수재까지 겹쳐 고통이 중첩된 올 추석은 축제를 의미하는 한가위 본래 분위기를 살리기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삶이 힘들수록 우리 문화나 풍습의 내면 깊숙이 숨어있는저력을 확인하고, 서로 만나 어려움을 털어놓고, 격려와 위무를 주고받으며 다시 일어설 수 있는용기를 갖는게 중요하다"고 올 추석의 의미를 강조한다. 〈崔美和기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