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설계사 정모씨(44)는 요즘의 자신을 '땡칠이'라고 소개한다.
지난해까지만도 고객과의 잦은 식사와 갖가지 모임들로 평일에는 거의 가족들과 마주앉을 시간이없었던 그는 IMF이후 급격히 줄어든 외부행사덕분에 정시에 퇴근, 가족들과 TV를 본다는 자조다. 주말이면 거래처나 동료들끼리의 골프약속에다 가족단위 행사등으로 바빴던 그였지만 최근엔동료들끼리의 골프모임마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술자리나 골프모임들이 대부분 일과 관계됐는데 일거리 자체가 줄어드니 만날 일이 줄어드는것"이라며 "모임도 줄이고 격도 하향시키는것이 추세"라고 말했다.
대구시의 한 간부는 "토요일이면 사무실에서 자장면을 시켜먹고 들어가기도 한다"며 "식사자리를선별해서 참석해야 할 정도로 모임이 많았는데 이렇게 줄어드니 멀건 대낮에 퇴근하는것이 어색하다"고 말했다. 그는 공무원 사정이나 사회발전이 주요 이유지만 IMF가 그런 변화를 더욱 가속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IMF가 몰고온 가장 큰 사회변화중 하나가 바로 '접대문화'의 변화다. 대구시내 모기업체의 한 홍보담당자는 "업무특성상 거래처 인사들과 잦은 식사시간을 가져왔으나 올해는 거짓말처럼 단 한차례도 그런 행사를 가지지 못했다"고 계면쩍어한다.
그는 "회사에서 예산을 책정않은 것도 이유지만 그런 행사를 벌여놓고 나면 결제가 되지않는다"며 "개인부담만 커진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기업들의 이런 접대성 경비 삭감은 소비패턴마저 변화시켜놓았다. 지난 추석 대구시내 모 백화점의 추석특판에서는 기업체들의 단체선물구입이 지난해에 비해 무려 30%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해마다 10%대의 신장을 보이던 데 비교하면 IMF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가를 짐작케해준다.이 백화점은 추석기간에 51억원의 상품권 매출실적을 올렸는데 이는 전년도보다 10%가 줄어든것이다.
특히 상품권중 10만원권 이상은 97년 39%에 비하면 절반인 20.5%에 불과했고 5만원권 이하가63%를 차지해 우리의 소비수준이 뒷걸음질치고있음을 보여줬다. 백화점 관계자는 "선물도 1만원대 이하의 초특가 생필품들이 인기를 끌었다"며 "60~70년대식 복고풍이 불었다"고 말했다.대구시는 지난해11월 98년도 예산안을 편성해놓고 IMF가 터지자 추경에서 부서운영비나 경직성경비를 무려 30%나 깎아버렸다. 올해도 99년 예산편성에서 여기서 더욱 줄여나가기로 해 공무원들은 사무실비품조차도 아끼고 또 아껴써야 할 판이다.
대구시내 유명 음식점들이 IMF이후 줄줄이 문을 닫거나 업종을 변경했고 지난해 10월말현재 7백41개이던 유흥주점은 올해는 6백88개로 줄어들었다.
시내 유명 유흥업소 지배인 이모씨(49)는 "업소 숫자가 줄어들었지만 그나마 금요일정도 방이찰 뿐 공치는 날도 많다"며 "극소수 고객들이 명맥을 이을뿐 대부분의 단골들이 발길을 끊어버렸다"며 업종변경을 고려중이라고 털어놨다.
대구인근 골프장의 경우 올들어 내장객이 적게는 20%에서 많게는 40%까지 줄어들었다는것이 업계측 주장이다. 전국적으로 일부 골프장은 덤핑까지 한다는 장모사장은 "아침에 많이 비고 특히올여름엔 낮시간도 많이 비었다"며 "골프장내 식당의 매상은 절반으로 줄었다"고 말했다.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데 마음이 편할 리가 있겠느냐는 설명이다.
IMF가 우리 생활을 바꾸고 있는것이다. 물론 지금까지의 접대문화가 과소비를 조장하고 경제적.도덕적인 부작용을 만들어온 일면이 있지만 건전한 소비마저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 이 기회에이권과 뇌물로 치부되는 접대문화를 청산하고 건전하고 밝은 사회활동으로서의 새로운 접대문화가 뿌리내릴수 있는 계기로 삼는다면 IMF는 우리에게 오히려 귀중한 기회가 된다.〈李敬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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