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자노트-아름다운 동네 엄마

동네 어귀의 라일락이 보라색 향기를 뽐어대기 시작하는 5월, 가정의 달입니다. 이 아름다운 5월에 한 사람의 아름다운 '동네 엄마'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크게 가진 것도, 자랑할 것도 별로 없는 평범한 30대 주부, 임정은(대구시 동구 율하동)씨입니다.

임씨와 기자는 같은 성당에 다니기에 알고 지내는데 자칫 조심스러울 수 있는 얘기를 꺼내는 사연은 이렇습니다.

며칠전, 한창 몰려다니기 좋아하는 중학생 아들과 친구 몇 명이 점심을 먹으러 왔습니다. 무심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임씨가 같은 집 2층에서 아버지와 함께 사는 두 중학생 형제(형은 아들의 친구)의 도시락을 매일 싸준다는 얘기였습니다.그 형제는 지난해 겨울 산업도로변에서 교통사고로 변을 당한 마리아 자매의 아들들이었습니다. 남의 일이라 쉽게 잊었던 그들의 일이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생각났습니다.

어느 날 마리아 자매의 장례식에 다녀오신 어머니는 "그 장례미사에서 울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다"며 "그저 순하고 양심적으로 보이는 자그마한 아버지와 두 아들이 나란히 영정 앞에 선 것을 보니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고 집에서도 울먹이셨던 그날의 기억 말입니다.

그리고는 잊어버렸던 것이죠. 어머니를 잃고 상심한 그애들이 상처한 아버지와 어떻게 사는지,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살면서도 관심 한번 나타낼 엄두조차 못냈던 것이지요.

그런데 임씨 가족이 성당 옆에서 율하동으로 이사를 오면서 그 형제들도 같은 집 2층으로 이사를 따라왔습니다.

한 지붕 아래 위층에 살게 된 날 이후로 임씨는 학교 가는 날이면 도시락을 세개씩 쌉니다. 하나는 아들 것, 두개는 마리아 자매의 아들 것….

"마리아씨가 중환자실에 누워 있을 때 혼자 마음속으로 약속을 했거든요…"

임씨는 그 말 한마디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백 마디 말보다 더 큰 마음을 난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성의에도 불구하고 마리아 자매의 작은 아들은 어린이날 병원에 입원했었습니다. 왜 병원에 갔느냐고 물으니까 태연스레 말했습니다.

"창자가 꼬였데요…"

제 전화소리를 듣던 어머니의 "끌~ 끌~" 혀차는 소리가 들리던 그날 밤, 별빛은 서럽도록 아름답게 빛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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