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인은 솔직함과 우직함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런 독일적 성실성이 가장 위험스럽고도 가장 행복한 변장술이라면 어떻게 볼 것인가. 혹자들이 '서양정신의 핵심'이라고 말하는 독일문화속에 그 해답이 들어 있다. '합리적인, 너무나 합리적인' 말로 대변되는 독일인, 독일문화의 정체는 무엇일까?
신일희 계명대총장을 비롯 계명대 이진우 교수, 대구대 변난수교수 등 연세대 독문학과 출신 학자 10명이 공동으로 쓴 인물로 읽는 독일문화사 '합리적인, 너무나 합리적인'(한길사 펴냄)에서 감춰진 독일인, 독일문화의 전통을 찾아보자.
시인 하이네는 "프랑스인들이 외면적인 사회적 혁명을 실행했다면 독일인들은 내면의 정신적 혁명을 수행했다"고 말했다. 이는 독일문화의 바탕이 바로 철학(정신)이 앞장서 일궈낸 결과라는 의미로 연결된다. 이 책에서 살핀 근대이후 독일의 문화사와 정신사를 만들어낸 위대한 인물들의 생애와 사상은 바로 독일문화의 이중성의 반영이다. 결론적으로 사회적 혁명과 정신적 혁명을 유기적으로 결합하고자 하는 독일적 전통은 '항상 현실의 논리를 날카롭게 파헤치면서도 현실을 보지 못하는 모순을 보였다'는 것이다.
계몽주의 교육사상가인 '레싱'. 그는 인본성을 이성의 완전한 실현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인본성 자체는 이성 즉 합리성만으로는 실현될 수 없다고 그는 말한다. 거기에는 필수적으로 우정과 관용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 레싱은 합리성이라는 이성과 우정, 관용이라는 감정의 모순되는 양면성을 모두 인정한 셈이다. 괴테의 '파우스트'와 '메피스토펠레스'도 또 다른 측면의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다. 악마적 화신으로 보이는 메피스토펠레스가 사실은 진정한 인간의 또 다른 모습이기 때문이다. 결국 파우스트에서 우리는 이성과 감정, 정신과 육체의 불안하지만 인간적인 자웅동체의 성격을 감지할 수 있다.
이러한 독일문화의 이중성은 '카프카'의 문학세계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카프카 문학의 주인공은 언제나 남성이다. 여성은 피동적 역할만을 수행할 뿐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카프카는 이런 극단적 서술형태를 통해 남성적인 것의 위험성을 언급하고 있음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즉 정신적인 것, 합리적인 것의 상징인 남성상을 통해 인간성의 왜곡과 불행을 경고하는 것이다.
독일문화의 이중성은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나타난다. 국제사회주의운동의 혁명가로 '피투성이 로자'로 불린 로자 룩셈부르크의 생애가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독일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암살사건으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극좌사회주의자 '로자'. 하지만 그녀는 풀 한포기, 박새 한마리, 구름 한점에서도 삶의 기쁨을 찾아내는 인간 '로자'였다. 두 로자 사이에 가로놓인 이중성은 독일문화의 심층에 뿌리내리고 있는 이중성의 표현에 다름 아니다. 토마스 만과 발터 벤야민·브레히트·괴벨스가 그렇고, 서양의 노자로 불리는 하이데거에서도 독일문화의 이중성을 발견하게 된다.
'합리적인 괴물 독일인'. 하지만 합리성이 지나치게 절대화되면 그것은 언제든지 비합리성으로 변형될 수 있다는 진리를 이 책은 말해주고 있다.
〈徐琮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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