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 여명이 다가온다-(7)안동 유교 문화권 개발

안동 사람들은 90년대 초반까지도 하루종일 대추 한톨을 먹고서도 배고프지 아니하다는 선비의 기질을 고수하려는 듯 70년 이후에도 근대화의 물결에 합류하지 못하고 끝없는 침체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고향을 변함없이 유향웅부(儒鄕雄府)로 자부해 왔다.

산업사회의 급변하는 사회상을 간과하고 냉철한 자기비판과 평가에 소홀한 채 이미 오래전 화석화된 옛 영화에 연연해 개화를 배척해 온 것이 사실이다.

시민들은 더이상 안동을 웅부라고 말하지 않는다. 홀로서기를 요구한 지방자치제와 IMF사태가 몰고온 적자생존의 태풍은 헛기침에 가려졌던 무력, 무대책한 양반 후예들의 허상을 벗겨 버렸다.

그토록 대단히 여기던 체면은 간 곳 없고 국가의 개발정책에서 철저히 소외된 때문이라며 환경과 입지 문제 등으로 가당치도 않은 국가공단 조성 등 정부에 연일 생존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안동대학교 이효걸(동양철학) 교수는 이를 박제된 유교문화의 볼모가 된 데 원인이 있다고 했다. 사회발전과 자기성찰에 최고의 사상·문화적 가치를 지닌 유가의 덕목을 시대상황에 맞게 확대 재생산하지 못하고 사장시킨 결과라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 지역 문중을 중심으로 항일운동에 분연히 몸을 던졌던 유림들이 만주 등 해외로 빠져나가고 연이어 신교육 길에 오른 2세들의 출향은 곧 안동 인물의 단절과 유학사상의 침체로 이어졌다.

그 가운데 무섭도록 변화하는 서구식 자본주의 산업사회를 맞은 것이다. 새로운 사회에 대응해 발전적인 변화를 도모하며 지역을 이끌어갈 인적자원의 고갈은 지역의 명운을 가르는 갈림길이 됐고 필연적인 유가의 폐습을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남의 일 잘되는 것은 못봐주고, 자신은 문집 한권 읽지 않은 채 조상과 집안 자랑에 인격과 능력앞에서 모두 평등한 사람을 두고 윗 분 아랫 것 따지는 지독히 기형적이고 폐쇄적인 지역색이 판을 치게 된 것이다.

혈통과 학문적 수수관계 속에 정적유대에 집착했던 폐쇄성과 보수성이 현대적 이기주의로 왜곡되면서 돌연변이를 낳은 것이다. 국가와 사회의 안위를 위해 수양하고 희생하는 덕목이 사라졌음을 의미한다.

안동에 눌러 앉아 살게 된 외지사람들은 이런 폐단을 꿰뚫어 보고 비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유가의 참된 의식과 지도자를 상실한 이곳에서의 정점은 시장, 군수였고 이권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이들과 야합하는 세칭 지역유지들이 판을 치는 곳이 안동이라고 했다.

그 때문에 외지서 온 관선 시장군수와 각급 기관장들은 말 많고 흉하기 좋아 하는 동네에서 구설수를 피하고 또 만사형통을 위해 토호들의 비위 맞추기에만 급급하기 다반사 였다.

지난 20여간 국책 지역개발사업에 계속 소외되고 대통령과 국회의원이 된 사람들마다 약속했던 대형 지역개발사업이 전혀 시행되지 않아도 시장 군수는 높은 곳의 눈치를 보느라, 한마디 한다는 유지들은 그들의 심기를 살피느라 구렁이 담넘듯 했다는 얘기다.

순수 민간운동으로 10년 세월 지역주민들의 애향심과 결집력을 확인 시켰던 경북도청유치운동의 이면에 이름만 대면 모를 사람없는 몇몇 유지들이 정치적인 문제 등으로 안동 도청이전 불가를 예단하고 타지역 도청이전 예정지(후보지)에 엄청난 땅을 사들였다는 소문은 시사하는 바 크다.

결국 정체성을 상실한 시민의식과 토호들의 이기적 전횡, 표류하고 맥 없었던 시정이 문제였다. 그렇다면 과연 세기말 이를 반전시킬 계기와 역량은 있는 것인가.안동시는 새 천년 거듭나는 안동 건설의 기치를 조선조 유교문화권개발사업에 두고 있다. 과업의 취지와 목적은 매우 돋보인다. 전통을 바탕으로 주민의식을 다잡고 안동을 안동답게 다듬어 세계화 하는 두마리 토끼잡기다.

그러나 방향 설정 오류와 짙은 정치색이 문제다. 시는 유교문화의 복원을 그 본질인 정신 생활문화에 두지않고 돈벌이 관광에만 맞추고 있다. 난데없이 수억원을 들여 관아를 복원한다는 식도 문제지만 주력사업으로 경주 보문단지와 같은 위락단지를 안동댐 주변에 조성 한다는 계획은 웃지 못할 난센스다.

여당은 지역균형개발에 대한 대통령의 의지임을 표방하며 이사업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계발계획 용역도 완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적잖은 내년 예산을 책정했다. 고무적일 수 있지만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두서 없는 애정 표현이 오히려 불안한 상황이다.

전문가 집단의 고증을 바탕으로한 지자체의 치밀한 시행계획과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맞물리는 프로젝트가 마련되야 할 것이다.

모델로는 유교문화기획단이 구성돼 사업 내용을 마련하고 다양한 유교문화체험이 가능한, 실제 행하는 관혼상제관, 서당 등과 의미를 학습할 수 있는 교육관을 마련해 생활윤리와 철학, 문화로서의 실존하는 유교문화를 복원하는 형태가 바람직 하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 사업이야 말로 21세기가 요구하는 동아시아적 정신문화 가치 정립에 부응하고 관련산업 발전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과업을 겸 하고 있어 주민의식 개혁과 지역발전 수단의 차원을 넘어 국가적 신자산을 창출하는 견인차로 육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토호의 발호를 수습하기는 여간 까다롭지 않다. 90년대 초반이후 각급 선출직 장과 의원 상당수가 지역 신흥 토호로 득세한 경우는 특히 그렇다. 이 역시 인물 됨됨이나 역량 보다는 혈족, 학연의 우세를 등에 업은 문중과 출신 학교 대표격이기 때문이다.

실정법을 위반하고도 좀처럼 낙마하거나 스스로 물러서는 법이 없다. 수치를 모른다. 이때문인지 진정 그들의 자리를 대신해야할 능력자와 인격자들은 항상 뒷전이다. 힘겹기도 하지만 그들과의 경쟁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안동은 지도자를 갖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다. 이골이 난 좌절감에 안동사람은 지쳐있다. 2000년대 지역발전 청사진으로 제시된 북부지역거점도시 육성, 첨단생명자원화단지 조성, 쾌적한 수변 환경도시 건설 계획은 그 자체가 허황된 것이라기 보다 의욕을 잃은 주민들이 먼 산 불보듯 한다는 점에서 전망은 밝지만은 않다.

해법은 원인의 역순에서 찾아야 한다. 단절된 유교문화정신을 새롭게 확대 재생산하는 것이다. 나와 우리가족, 그 시절 그 때의 영화에만 연연하는 폐쇄적이고 수구적인 행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익숙해진 패배주의를 털고 적극적인 실천과 참여에 나서야 한다.

이호걸교수는 서구적 윤리규범인 합리성과 공공성의 원칙을 수용하는데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다. 조선후기 사림들이나 구한말 의병활동과 독립운동을 주도한 유림들은 시대변화에 적응하며 나아가 혁신적 사고의 실천으로 새로운 사회를 능동적으로 개혁하고 발전시켰음을 강조 했다.

그러한 사고의 저변은 언제나 안동인의 곁에 있었다. 다만 잊고 살았고 시대에 맞지 않고 개인의 영달에 반한다며 덮어두고 왜곡시켰으나 이제는 되살려야 한다. 안동지역과 안동인과의 불가분의 연속성을 갖는 유교사상을 제외하고서는 안동을 얘기할 수 없다.

20세기를 주도한 산업자본주의의 뒤안에 황폐해진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주목받는 것이 동아시아 유교문화다.

안동은 그 정점에 있다. 왜곡된 유교문화의 폐습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던 안동이 그 문화로 다시 21세기를 꽃피울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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