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블루진 이야기

지난 세기 사람들로부터 가장 애호를 받은 디자인이 무엇인가? 나는 서슴없이 블루진이라고 말하겠다. 블루진은 실로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다. 사이즈만 웬만큼 맞으면 부부간, 남매간, 친구사이에 공유해도 자연스레 어울린다. 길이가 길면 요사이는 크롭프트 팬츠(속감이 드러나게 접어입는 바지)가 유행이므로 걷어서 입어면 된다. 적당한 길이로 잘라 입어도 되니 단을 바느질할 필요조차 없다. 허리 사이즈가 좀 큰 것쯤은 엉덩이에 걸쳐 입는 힙합패션으로 이해가 된다. 연령의 구애도 받지 않는다. 어린 아기로부터 흰 머리의 노인에 이르기까지 보기 좋게 어울린다.

또한 기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알래스카나 스칸디나비아로부터 동남아나 아프리카에까지 자연스레 어울린다. 우리나라 젊은이들만 보아도 사시사철 블루진 바지 하나면 해결이 되고 있지 않은가. 인종간의 피부색 차이도, 빈부의 차이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래 입어 너덜너덜 해도 흠이 되지 않을 뿐더러 일부러 찢어서 입는 것이 멋이기도 하다. 요즘은 입고 가는 장소에도 구애받지 않는다. 얼마전 모 영화제의 시상식 장면에 유명 여배우가 블루진바지를, 그것도 갈갈이 찢긴 바지를 입고 나온 장면을 모두 보지 않았던가?

1850년경 골드러시로 한창인 샌프란시스코에 리바이 스트라우스라는 청년이 탐광자들에게 텐트를 팔려고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에선 텐트보다 바지가 더 필요했다. 모험심이 많은 그는 텐트를 잘라 바지를 만들어 팔았다. 튼튼하고 단순하고 기능적인 블루진이 탄생하게 됐던 것이다. 그의 소박한 작업복 바지가 현대 세계인들에게 섹시룩으로 사랑받고 있다는 걸 스트라우스가 알 수 있다면 매우 즐거워할 것이다.

블루진이 그리도 오랫동안, 폭넓게 사랑받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인간을 위한, 인간을 잘 이해한 디자인, 곧 굿 디자인(Good Design)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미 얻은 성공에 안주하는 대신 이노베이션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실루엣과 색상과 신소재의 적용 등 끊임없는 연구와 개발이 놀라운 결과를 가져온다는 점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바가 크다.

김희.패션 디자이너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