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붕괴 현상이 곳곳에서 불거지면서 국가백년대계인 교육의 뿌리가 흔들린다는 우려가 높다. 산업사회에서 자란 아날로그 세대와 다양성을 추구하는 디지털 세대가 맞닥뜨리는 교육현장에서 갈등과 마찰이 빚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결국 해답은 교사와 학생, 학부모, 지역사회가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교육공동체를 만들어나가는데서 찾을 수밖에 없다. 지난 1월부터 2월까지 기획시리즈 '새 천년 교육 밑그림 다시 그리자'를 통해 교육현장의 전반적인 문제점과 대책을 짚어본 매일신문사는 앞으로 구체적인 논의와 실천의 현장을 찾아 대안을 모색하는 시리즈를 마련한다.
편집자주
"학교에서 독서여행을 다녀오고부터 우리집 여행문화가 바뀌었어요. 무작정 떠나는 것이 아니라 미리 목적지를 정하고, 온가족이 모여서 행선지를 정하고, 갈 곳에 대해서 예비조사를 하고 가요. 동생과 저는 꼭 여행기록을 남기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부모님이랑 몇번 감은사를 다녀와도 별 감동을 못받았는데 죽어서 동해용이 되어서까지 신라의 앞길을 걱정한 문무대왕의 나라사랑 마음을 알고부터 감은사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벅찹니다. 저도 그런 인물이 될 겁니다"
"중학교 3년을 통틀어 딱 1번만 독서여행을 가는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매년 독서여행을 가고 싶습니다"
올해로 3년째. 매년 독서여행을 다녀오는 입석여중(교장 류두환) 소녀들은 '준비된' 여행이 삶을 얼마나 아름답고 풍부하게 꾸며주는지 잘 알고 있다.
이학교가 97년부터 독서여행을 떠나게 된 것은 형식적이고 소비적인 수학여행 문화를 벗어나야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며서부터이다.
어른들의 '묻지마 관광'을 그대로 배운듯 사진찍고 춤추고 노래하고 먹고 돌아서면 끝나버리는 수학여행의 진부함을 극복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에서 비롯됐다.
"21세기를 대비하는 새 학교문화 창조의 핵심은 창의력 교육과 함께 인간교육의 내실화가 이뤄져야한다고 봅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체험 학습이 실천돼야 합니다류두환 교장은 이런 관점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독서와 여행이 어우러지는 현장답사라고 여기는 김득순 교사 등이 독서여행을 완벽하게 준비할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전교생이 매일 아침 자율독서시간(오전 8시15분~9시까지)을 통해서 책을 읽고, 수학여행을 가는 학년은 독서여행 코스와 관련된 작가의 작품을 읽고 독서감상문을 쓰도록 지도한다. 필요한 책은 사기도 하고, 이 학교의 자랑인 '작은 도서실'을 통해서 빌리거나 모둠별로 여행관련 도서를 읽기도 한다.
독서여행은 김득순 교사만이 아니라 국어과 미술과 사회과 과학과 교사 등 전교사가 통합적으로 발벗고 나선다. 동촌비행장 입구에 위치한 이학교는 교육여건과 학부모열의가 다소 떨어지지만 그럴수록 더 좋은 교육을 받아야한다는 것을 교사들은 알고 있다. 가정에도 통신문을 돌려서 마음의 준비를 시킨다.
독서여행은 한학년이 동시에 움직이지 않고 2개 혹은 3개팀으로 몇개월 시차를 두고 실시, 여행의 효율성을 극대화시킨다. 지난 99년에는 1학년 450명(11개반)을 2개팀으로 나누었고, 98년에는 3개팀으로 분류해서 독서여행을 다녀왔다.
지난해는 경주~대왕암~문무왕 수중왕릉 감은사지~기림사 김시습사당~불국사 유치환 시비(詩碑)~영지못~김동리 생가(경주시 성건동)~박목월 생가(건천읍)~영천 박노계사당 도계서원을 둘러서 귀가하는 것으로 짰다.
달리는 학습장인 관광버스 안에서 학생들은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구름에 달가듯이 간 나그네가 즐긴 자연과 인간의 조화미를 그려보고, 청마시비 앞에서는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행복하였노라'던 유치환의 사랑해법을 소리내 외쳐본다.
학생들은 단순히 책을 읽고 현장을 체험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김시습 사당의 찢어진 창호지를 붙이고, 새먹이를 던져주며, 탑의 낙서를 지운다.
잡초에 가려 보이지 않던 '생육신 김시습'이라는 비문이 선명히 드러나자 일제히 환호성을 올린 입석여중생들은 "우리학교에서 정기적으로 매월당 사당을 청소하고 관리하자"는 기특한 의견까지 냈다.
"박목월님이 사시던 곳이 창고처럼 피폐해져있고, 집터만이 남아있어서 아쉬웠다" 던 이학교 신승연양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경주시와 유생들은 목월생가부지를 매입하고 동판으로 '목월생가'라는 안내문을 새겨두었다.
"초등학교 수학여행때는 가방 가득 먹을 것을 넣어갔는데 독서여행때는 먹을 것 대신 책을 가득 넣어갔습니다. 힘들었지만 살찐 돼지가 아니라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된 기분을 영원히 간직하며 살겠습니다"
여행은 먹고 놀기 위해서가 아니라 깨닫기 위해서임을 체득한 학생들은 "내가 어른이 된다면 지금까지의 오락 위주 여행을 고칠 것"이라며 각오를 다진다.
崔美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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