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칼럼-밀라노 프로젝트를 위하여

섬유도시 대구가 세계 패션의 중심이 되겠다는 기획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야심찬 밀라노 프로젝트를 위해 온 시민이 중지를 모으고 흥분에 들떠 있다.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정부차원에서도 적극 지원하고 나섰으니 기대가 크다.

단 조급증은 금물이다. 모든 문화가 그러하지만 특히 패션은 고도의 테크놀로지, 세련된 예술적 감각, 상업적 기획성 등 예민한 요소를 총 망라한 문화의 첨단이다. 그리고 문화적 감성, 창조적 정신의 힘은 삶의 밑바탕으로부터 배어 나오는 것. 어쩌면 삶, 그 자체처럼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문화는 지루한 인내와 기다림의 소산이다. 당장의 가시적인 계산이 금물인 것은 이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 전문학과를 설립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치원 교육이다. 고도의 감성, 창조적 인간은 유치원 이전 젖먹이 교육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유치원때부터 지적 암기 교육에 매달려 성적 몇점에 아웅거리는 퐁토에선 패션과는 너무나 거리가 먼 이야기다.

밀라노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우선 그 고장의 유치원 교육부터 살펴봐야 한다. 교육의 패러다임부터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걸 실감할 것이다. 성적 몇점이 아니다. 아이들의 무한한 창조성과 호기심을 자극하고 자유로운 발상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천재의 어머니들은 예외없이 아이들을 어릴적부터 박물관, 미술관에 잘 데려 갔다는게 학계의 보고다.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서다. 고로 엄마가 먼저 깨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문화 중산층'의 육성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도시 전체가 문화적 토양으로 축축이 젖어 있어야 한다. 뉴욕, 파리가 세계 패션을 주도하게 된 것도 몇 사람 패션 전문가의 힘이 아니다. 도시 전체가 문화적 토양이 되어 주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피렌체 예술, 비엔나 음악 등, 그 도시에 들어서면 문외한도 고장 전체에서 풍기는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거기선 뭔가 절로 될 것 같다. 사람도 그렇고 사는 집, 나무 한 그루에 이르기까지 도시 전체가 거대한 예술의 장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대구는 아직도 분지적 기질의 폐쇄성이 남아 있다. 권위주의, 형식, 격식을 따지는 풍토는 지금도 여전하다. 어둡고 경직되어 있다.

보다 개방적이고 유연성이 있어야 겠다. 아이들의 여린 감성을 짓밟지 않고 잘 자랄 수 있게 해야 한다. 밤 하늘 별이 밝거든 공부하는 아이를 밖으로 불러내 함께 쳐다보자. 아이와 함께 눈물이 나도록 화려한 저녁 노을에 취해도 보자. 도심에선 미술관 박물관에 자주 데려가고 야외에선 자연의 세계에 심취하게 하자.

불행히 우리의 주말 콘도는 광란이다. 지지고 볶고 포식을 시키고 노래방에서 악을 쓴다. 그리곤 고스톱으로 밤을 지샌다.

아이들에게 명상시간을 주자. 호젓한 시골길을 거닐어 보자. 앙증맞은 들꽃, 풀벌레소리, 햇빛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신비로운 색깔, 물소리, 바람소리…이보다 더 좋은 교육은 없다. 감성의 물결이 가슴에 일렁인다. 색감, 색상만이 아니다. 예민한 감성, 창의적 예술의 싹은 이렇게 길러지는 것이다.

많은 분야의 전문가가 총동원되어야 한다. 그리고 기름때 묻은 기술자까지도 문화적 감성이 풍부해야 한다. 하버드 생물과 학생은 필독서가 600권이다. 놀라지 마라. 전문서적이 아니다. 역사, 시, 소설이 주류다.

밀라노 프로젝트는 잘 되어야 한다. 단, 거기엔 오랜 인내, 그리고 교육의 패러다임부터 바뀌어야 한다.

성균관대 의대교수·신경정신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