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우리집 주치의-손가락 따기의 위험

며칠 전 일이다. 네살 난 여자아이가 열손가락을 물어 뜯긴 채 피를 흘리며 응급실로 들어왔다. 전날부터 몇번 토하고 설사를 하더니 아침에 사지를 비틀며 눈이 돌아가고 불러도 대답이 없자 놀란 엄마가 옆집 사는 고모를 불러 피를 내느라 이랬다는 것이었다.

그 아이는 심한 세균성 이질로 탈수가 심하고 그 독성 때문에 경련을 일으켰던 것이다. 그걸 할머니가 하던 대로 따서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그 덕분에 아이는 병 자체보다 손가락 상처 치료로 더 고생해야 했다.

흔히 아이가 토하면 '체했다'며 손가락 끝을 찔러 피를 낸다. 우리 할머니들은 흔히 이불 꿰매는 커다란 바늘에 콧김을 쓰윽 쐬고 머리카락에 쓱쓱 문지른 뒤 이렇게 해 온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토할 때는 전문의의 진찰을 받고 그 원인을 밝혀 치료해야 한다. 아이가 토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토하고 반복해서 발작적으로 울다가 뚝 그치고, 다리를 당겨 올리고 괴로워하면서 대변에 피가 나오면 장충첩증을 의심할 수 있다. 이 경우 '체했다'고 따고만 있다간 자칫 치료 시기를 놓쳐 수술까지 해야 할 만큼 악화될 수도 있다.

설사를 하면서 자주 토하고 자꾸 누우려고 하면 급성 위장염일 가능성이 높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홍역도 열이 계속되면서 먹지 못하고 목이 부어 토하는 증상을 나타낸다.

열이 나면서 토하고 머리를 아파하면 요즘 유행하는 뇌수막염도 생각해야 한다. 지금도 뇌수막염 아이들 중에는 병원에 오기 전에 따고 오는 경우가 많다. 급성 위장염이나 뇌수막염으로 입원해 있으면까지 그러는 경우가 있다. "토하는 것은 체해서 그러니 꼭 한번 따고 오겠다"고 우기는 보호자들을 보면 난감해진다.

손가락을 따는 것은 힘들어 하는 어린이에게 또 다른 고통을 줄 뿐이다.

정명희 과장(대구의료원 소아1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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