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영화 '실락원'의 한 장면.
남녀 주인공이 기차여행을 떠난다. 호젓한 야외극장. 저녁 산들바람이 나뭇잎을 간지른다. 무대만 응시할 뿐 한마디도 나누지 않는 둘. 그러나 핸드백을 꼭 쥔 손의 떨림, 조용한 숨결, 흔들리는 눈빛. 둘은 운명을 예감한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연극처럼.
지난 10일 밀양 '숲의 극장'을 찾았다. '실락원'의 야외극장처럼 세련되진 않았지만 느낌은 퍽 안온했다.
대구에서 1시간 30분 거리. 드라이브 기분에 연극을 본다는 느낌이 더해지면서 흥분으로 설렌다.
밀양시청에서 창녕쪽으로 5분 여.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 오른쪽에 밀양연극촌이 보인다. 폐교된 월산초등학교를 개수해 지난해 10월 문을 연 연극인들의 '둥지'.'숲의 극장'은 교문 오른쪽 400여 평되는 '미니 숲'에 위치한 야외극장. 40~50여 그루의 살구, 단풍, 느티나무 사이에 긴 통나무 좌석을 앉힌 것이 객석. 그래도 400여 석이나 된다.
아직 '숲의 극장'이라 하기엔 이르다. 나무의 수령(樹齡)이 30년이 고작. 그래도 조명을 받은 나뭇잎들이 제법 야외극장 티를 낸다.
개관 기념 공연작 '산너머 개똥아'(연출 정동숙)는 지난 4월 일본 이다페스티벌에 출품됐고, 지난 6일까지 서울 문예회관에서 공연된 작품이다. '문화게릴라' 이윤택이 이끄는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야심작. 혼돈의 시대, 뻘같은 세상에 아기장수 산너머 개똥이가 내려와 사람들을 구한다는 얘기.
탈, 꼭두놀음, 사물놀이에다 테크노가수 이정현의 '바꿔'가 한꺼번에 튀어나오는 음악가족극이다. 고금의 대중적 요소를 버무린 해학넘치는 작품.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다. 연기자들이 객석으로 뛰쳐나가, "아줌씨, 신분증 좀 줘보세요"라고 해서 신분증을 주면 "우~ 린다 김~"해서 사람들을 웃긴다. "산 너머 개똥아~, 놀자~"라고 관객이 함께 합창하면 용이 죽일 듯이 관객들을 위협하고, 쫓고 쫓기다 도망치는 곳도 관객의 등뒤. 연기자들이 수시로 객석을 뛰어다니는 바람에 좋은 것은 어린이관객이다.
그러고 보니 이날 200여 관객의 대부분이 가족이다. 실내극장처럼 엄숙하지 않아도 되니 아이들의 동선도 훨씬 편하다. 동창회 모임으로 온 관객, 거래처 사람들과 함께 온 관객도 많았다. 20대 젊은이들 일색인 연극장 분위기와는 판이하다. '숲의 극장'은 상설극장. 매주 토요일 연극을 공연할 계획이다. 17일 오후 4시30분, 7시30분 '산너머 개똥아'를 2회 더 공연하고, 24일과 7월 1일에는 경주문화엑스포 주제공연인 '도솔가-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연출 이윤택)를 처음으로 선보인다.
'도솔가···'는 누이동생을 찾아 세속으로 내려온 짜라가 독재와 부패, 절망에서 무리를 이끌고 황야로 떠나 새로운 세상을 맞는다는 줄거리.
정가, 범패, 민속춤, 선무도, 국악관현악과 서구의 테크노, 록, 힙합이 충돌을 일으키며 전해 새로운 소리와 몸짓,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악(樂)·가(歌)·무(舞) 총체극이다. 오는 7월 7일부터 서울 LG극장에서 공연되기 전 첫선을 밀양에서 보이는 것.
혹 리허설의 개념은 아닐까. 하용부 촌장(밀양백중놀이 전수조교)은 완강히 거부한다. "'숲의 극장'에서 공연되는 작품은 '완제품'"이고 "리허설까지 다 거쳤으며 극단이 심혈을 기울여 공연한다"고 강조했다.
단점은 무대가 좁다는 것. 대극장처럼 화려한 무대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맑은 초 여름밤 나무 아래서 연극을 본 다는 것 자체가 매우 낭만적이다.
이윤택씨는 "처음엔 대구 근교의 연극촌을 구상했다"고 했다. 그러나 교육청으로부터 폐교 임대 불가통지를 받고 할 수 없이 밀양으로 선회했다는 것. 한 밀양시민은 "연극촌이 밀양에 생긴 것은 천복(天福)"이라고 했다. 아쉬움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金重基기자 filmt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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