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의 밤은 생각했던 것 만큼 어둡지도, 다니지 못할 만큼 위험하지도 않았다. 다른 지역은 몰라도 수도 프놈펜에서 만큼은 그렇게 보였다.
일본이 관세를 물어 가면서까지 자재를 들여와 메콩강 위에 건설했다는 '우정의 다리'건너편 고급 식당가에 도착한 것은 밤 8시쯤. 강을 건너니 여기도 캄보디아인지 조차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강변을 따라 50개가 넘는 식당이 불을 밝히고 손님을 맞고 있었다. 음식값도 1인당 10달러 이상. 외국계 공장의 법적 임금이 월 30∼35달러, 공무원 월 평균 보수가 15달러에 불과하다고 했지만, 넓은 주차장은 고급 승용차들로 메워져 있었다. 계층간.도농간 소득 불균형이 심하고, 최근에는 외국 원조와 투자 확대로 부를 쌓은 새로운 소비계층이 등장해 현지인들도 거기를 자주 찾는다고 했다.
물론 이곳 고급 식당가를 제외한 다른 지역 상점들은 대체로 일찍 문을 닫는 편이라고 현지인들이 알려줬다. 얼마 전 한식집 '한국관'을 개업했다는 윤평로씨는 "전기료가 비싸 대부분은 어두워지면 문을 닫는다"고 했다.
여전히 밤늦은 시간에는 인적이 드물어 위험하다는 얘기도 해줬다. '프놈펜 뉴스'라는 교민 소식지를 만드는 김종서씨는 "지난 5월말 친구집에서 모임을 가진 후 늦게 귀가하던 한국인 부부가 교차로에서 한떼의 모토택시(오토바이 택시) 강도들에게 패물 등을 강탈당했다"고 겁을 줬다. 문득 우리 대사관에서 알려준 신변안전 수칙이 떠올랐다. "야간외출은 삼가고 특히 야간에는 모토택시 및 시클로(자전거 인력거) 탑승을 삼갈 것, 후미진 지역 출입 자제, 고액권 지폐 과시 금지" 등등.
그러나 어쩌랴. 호텔로 돌아 가려면 모토택시를 탈 수밖에. 허리를 안는 척하며 권총을 차고 있는지 여부부터 살펴야 했다. 상쾌한 밤공기도, 이국의 야경도 관찰할 여유 없이 오토바이는 내달렸다.
프놈펜의 밤거리엔 특징적인 게 있었다. 'KTV'라는 간판이 유독 많이 눈에 띄었다. 방송국일까, 소형 스튜디오일까? 그러나 그런 간판을 단 곳은 레이저 디스크를 사용하는 가라오케 술집이었다. 교민이 400여명인 이 도시에도 한국노래가 나오는 가라오케가 있었다. 앳돼 보이는 여종업원들이 있는 것까지 한국을 닮았다.여종업원 중에는 베트남 출신이 많다고 했다. 이들은 대부분 생활비를 벌기 위해 밀입국한 뒤 마사지 업소나 매춘가로 흘러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캄보디아에서 가장 많이 접할 수 있는 유혹? 중의 하나가 매춘이라는 얘기였다. 호텔에서도 틈만 보이면 남자 종업원이 다가와 서툰 영어로 "영 걸, 쫛달러"를 이야기했다.전쟁이 낳은 또 하나의 상흔이었다.
프놈펜의 아침을 깨우는 것은 시끄러운 오토바이 소리인듯 싶었다. 새벽부터 도로를 꽉메운 오토바이 행렬은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됐다. 대부분 사람들이 모토택시나 시클로로 이동하기 때문. 작은 오토바이에 어른.어린이 각 2명씩, 보통 3∼4명이 타고도 서로 얘기까지 주고 받으며 자연스럽게 다니고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편하게 앉아서 갈 수 있을까 신기했다.
재 캄보디아 한인회 김용덕(49) 회장은 "IMF 이후 한국인 중고 오토바이 매매업자가 많이 들어왔다"고 했다. 승합차.트럭과 마찬가지로 여기선 한국산 대림 100cc 중고 오토바이가 특히 인기 있다는 얘기였다.
빈부격차, 부패, 매춘 등 어두운 밤의 이미지와는 달리 사람들은 여유있고 밝은 표정으로 이방인을 맞았다. 소비시장이 프놈펜에 집중돼 있고 각국의 투자도 활기를 찾아가기 때문인가 싶었다. 그러나 김원태(55) 한국 대사는"한국은 대 캄보디아 투자에 있어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발이 느리다"며, "아직까지는 활발한 투자가 없다"고 했다.
프놈펜의 관광 명소인 왕궁과 국립박물관을 둘러보기 위해 시클로에 올랐다. 요금은 모토택시 보다 조금 비싼 편. 왕궁 앞에 이르자 정작 눈길을 끈 것은 광장 건너편 씨소왓 거리에 나란히 걸려있는 태극기와 북한 인공기였다. 그제서야 이 나라가 북한과 특수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이 머리속에 되살아 났다.
북한과 캄보디아는 1964년 단독수교 했으며, 시아누크 국왕의 평양 망명 시절 김일성은 그를 국빈으로 대접했고, 그 후 국왕의 경호원들은 대부분 북한인이었다. 지금도 북한 외교공관 중 캄보디아 대사관이 규모에 있어 가장 크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프놈펜에 있는 북한대사관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런 가운데도 입구 벽면 게시판에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의 악수하는 사진이 붙여져 있었다.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도 근무 중인 현지경찰은 반응이 없었다. 교민 김성태씨는"남북 정상회담 이전엔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했다.
프놈펜 하늘에 함께 휘날리는 태극기와 인공기, 자랑스레 걸려있는 남북 정상 사진…이국에서 문득 우리에게도 통일이 가까이 오고 있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朴云錫기자 multicult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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