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특별기고-국치일과 독립운동기념탑

'새와 짐승들도 슬피 울고 바다 또한 찡그리네. 무궁화 이 나라가 이미 물속으로 가라앉았네'(鳥獸哀鳴海岳嚬 槿花世界已沈淪). 1910년 경술국치 소식을 듣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매천(梅泉) 황현 선생의 '절명시'의 한 구절이다. 일제에 의해 끝내 나라가 망하자 지식인으로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밖에 없었던 선생의 애통한 마음이 묻어난다.

8월29일 어제는 이완용이 한일합병조약에 서명해 우리 나라를 완전히 일본의 손에 넘겨 준 지 꼭 90년이 지난 날이다. 이완용은 그 공으로 일본 정부에 의해 백작의 칭호를 부여받았지만, 그로부터 우리는 암울한 식민통치의 길로 들어서지 않으면 안되었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민족과 국가를 저버린 한 매국노와 의기를 참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사의 삶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과거의 어두운 역사를 오늘의 교훈으로 삼고자 하는 노력이 얼마나 있는지 되묻고 싶다. 거리마다 왜색(倭色)이 넘쳐나고, 비뚤어진 개인주의가 님비현상으로 표출되어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다. 그렇다고 지금과 같은 국제화, 개방화시대에 과거와 같이 국수적인 논리로 일관하자는 말은 아니다. 민족의 자존과 국력을 바탕으로 일본 문화 뿐 아니라 서구문화와 교섭하는 가운데 새로운 민족적 전통을 창출하는 일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새로운 천년의 역사를 시작한 지금, 우리의 민족적 정체성을 찾고 숭고한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되새기는 일은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 50년에 걸친 민족수난기 대구.경북 독립운동자의 위상과 긍지를 새로이 하자는 운동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이른바 '대구.경북 독립운동기념탑과 기념광장 건립 사업'이 그것이다. 우리지역은 1894년 안동의 서상철 의병활동과 사회경제운동인 국채보상운동의 발원지이다. 그리고 광복단, 국권회복단, 형평운동의 중심지이며 저항시인 이상화와 이육사를 배출한 지역이다. 우리 선조들은 언제나 독립운동 발단의 선봉에 서서 뜨거운 나라사랑과 숭고한 희생정신을 발현했다. 우리지역에서 발원한 독립운동의 정신은 전국에 번져가 인권과 자유, 평등이라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선양하고, 세계 모든 인류가 추구할 보편의 가치와 비전을 제시하였다.

'대구.경북항일독립운동기념탑건립'사업은 한 두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 질 수 없다. 이미 사회 각계 지도급 인사 3천여명이 추진위원에 참가하고 있고, 대구 대공원 내에 부지를 확보하였다. 그리고 추진위원과 시도 민의 후원금들이 속속 답지하면서 건립운동이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이 사업은 우리지역 선열들의 높은 뜻과 위대한 업적을 기리고, 독립운동의 정신을 현창하여 후손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는 뜻깊은 운동이다. 따라서 그만큼 시도 민의 관심과 성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오늘 90년 전의 국치를 곱씹으며, 지역 민의 손으로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을 독립기념탑의 위용을 우리모두 생각해 보자!

박찬석(대구경북항일독립운동기념탑건립위원장.경북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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