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정호칼럼-너무 빨리 샴페인을?

다시 한번 우리들 스스로 분명히 해두어야 되겠다. 오늘의 대북포용정책은 과거 서독의 동방정책과 마찬가지로 통일정책이 아니라 '평화정책'이다. 통일을 위해서는 분단의 경계선을 없애야 된다. 분단의 스테이터스 쿼(status quo=현상)를 부인해야 된다. 그러나 평화를 위해서는 분단의 경계선을 놓아두어야 한다. 분단의 스테이터스 쿼를 시인해야 된다.

평화도 얻고 통일도 얻겠다는 것은, 게다가 '적화통일'도 '흡수통일'도 아닌 평화적인 '협상통일'을 하겠다는 것은 꿈으로선 아름다우나 현실적으로는 환상이다. 그것은 북방정책과 동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기수들이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단된 민족의 통일에 대한 열망이 너무나도 간절할 수 있기 때문에 정책 설명의 수사(修辭)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통일은 20년, 30년후에나 가능하다"고 긍정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빌리 브란트 당시 서독 수상은 통일은 "예측가능한 미래에는 불가능하다"고 부정적인 표현을 썼다. 말은 긍정과 부정으로 갈라지지만 속은 같은 뜻이다.

정치가란 권력의 위임을 받은 자기 임기 내의 예측가능한 미래에 대해서만 책임있는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측가능한 한계를 넘어선 20년, 30년후의 미래에 대해선 오직 '희망'을 표백할 수는 있을 뿐 그러한 불확실한 미래를 정책의 프로그램에 넣을 수는 없다. 예측가능한 미래에 불가능한 일을 유권자인 국민 앞에서 선거를 의식해야 하는 지도자가 "불가능하다"고 솔직히 말하는 데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분단고착론자'로 비난받은 브란트는 여당인 사회민주당 안에서도 이탈하는 의원들이 있는 가운데 의회의 불신임안을 겨우 두 표라는 아슬아슬한 표차로 모면할 수 있었다.

우선은 한반도에 평화의 정착을 위해 진력하는 일이요, "내 임기 중에 통일은 불가능하다"고 기회있을 때마다 밝히고 있는 김대통령의 말은 정직하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을 위한 동방정책이었고 대북정책이란 말인가. 이미 지난 번 여기에서 밝힌 바와 같이 분단된 동족끼리 싸우지 말고 평화를 유지하자는 것이요, 국토는 갈라졌어도 민족은 갈라지지 말자는 것이요,그럼으로써 몹시도 핍박한 한 쪽의 동포를 도와주자는 것이 대북정책.동방정책의 3대 기본목표(쓰리 에션셜)이다.

땅은 갈라져 있어도 사람은 갈라져서는 안된다는 것이 동방정책.대북정책의 본질이다. 비록 지금은 '한 민족 두 국가'라는 복수국가.분단체제 속에 살고는 있지만 우리가 한 민족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북한 주민의 '일상적인' 왕래와 소통이 필수적이다. 모든 공동체(community)와 마찬가지로 민족공동체도 그 구성원 사이의 일상적인 마음의 주고받음(communication)이 없이는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서로를 갈라놓았던 경계선을 서로가 건너가 만날 수 있는 경계선으로 바꿔놓자는 것이 동방정책.대북정책의 출발점이었다.

김 대통령 일행이 평양을 방문해서 역사적인 6.15공동선언을 발표한 이후 분단의 경계선은 엄존하고 있으나 그 높이는 크게 낮아졌다. 금년 6월 이후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많은 사람들이 북에서 오고 북으로 갔다.

그러나 1천만 이산가족 가운데서 남과 북의 헤어진 가족을 상봉하기 위해서 경계선 북쪽으로 찾아간 사람은 아직 고작해야 100명밖에 되지 않는다. 그 대신 이산가족 아닌 언론사 사장단 50여명이 평양에 가서 칙사대접을 받고 북녘땅 관광을 하고 돌아왔고 다시 선발된 100명의 사람들이 백두산 관광을 하며 북측 초대소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고 돌아왔다. 마치 '사람'보다 북쪽 '땅'을 관광하는 것이 대북정책의 성과인 것처럼.

한편 북쪽에서 남쪽으로 찾아온 사람들은 무슨 예술단.교예단뿐만 아니라 심지어 이산가족 방문단까지 뽑혀온 엘리트들이다. 이북관광목적이 아니라면 대북포용정책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우리가 너무 빨리 또 샴페인을 터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울산대 석좌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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