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좌석버스 1천100원. 담배 한갑 1천200원. 자장면 한그릇 2천400원. 영화 한편 5천500원. 연극 한편 1만5천원. 오페라 1편 3만원. 경주세계문화엑스포 입장권 1만원(성인, 예매기준).
유리창처럼 맑은 하늘, 가을이 한복판이다. 지금 경주에서는 폐막 1달여 남겨둔 세계문화엑스포가 한창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아침 9시면 정문은 밀려드는 입장객들로 장마당을 이루고 경주 보문단지로 이르는 길은 종일 관광버스 행렬이 이어진다. 가을 햇살아래 길게 늘어선 인기공연장의 관람객들을 보노라면 엑스포의 인기를 실감하게 된다. 한글도 깨치지 못한 시골 할아버지 할머니에서부터 PC게임에 손익은 유아원 어린이들까지 관람객들로 주최측을 힘나게 만들어준다.
◈'놀이공원'으로 전락한 경주엑스포
하루 평균 3만명이 엑스포장을 찾고 있다. 중고생과 각종 단체에서 경쟁적으로 엑스포장을 찾고 있다. 지난번 행사때보다 더 늘어난 그늘과 쉼터, 화장실 등 휴식공간과 정리된 공간배치, 질서있는 관람수준…
그러나 관람객들은 뭔가 허전하고 아쉽다. 엑스포에 오기위해 적어도 서너시간씩은 좋게 길에서 보내야 하는 관람객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엑스포에 와서 만나는 것은 동네 극장이나 놀이공원보다 달라야 한다.
루브르 박물관 앞에서 입장하기 위해 줄서 기다려 본 경험이 있다. 93년 대전에서 열린 세계엑스포에서 전시관마다 줄서기 경쟁을 벌였던 기억이 새롭다. 미술에 비전문가인 기자가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를 만난 기억은 솔직히 "세계적 명품을 '진품' 그 자체로 직접 보았다"는 자랑이었다. 기자처럼 수많은 한국 관광객들은 더러는 밀쳐가며 그 앞에서 사진찍기 위해 소란을 벌인 것으로 기억한다. 모나리자는 사진 모델이었다. 루브르는 그같은 수많은 세계적 진품들이 오늘도 세계의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에 비하면 일회성 행사에 그친 대전 엑스포는 정부와 정부에 등떠밀린 기업들이 천문학적 예산을 들여 만든 볼거리였다. 당시 언론은 '줄서는 것도 문화'라 미화하며 줄서기 경쟁을 부추겼다. 기자로서는 그래도 긴 시간을 기다린 만큼 그때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과학적 실상에 대한 체험으로서 그 흥분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었다.
◈상징성 있는 인프라 축적 필요
경주세계문화엑스포라고 이름짓고 그것을 천년 고도 경주에서 벌인다는 발상부터 관람객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너무 '이름'에 충실하려 한 때문일까. 주제공연-도솔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을 보노라면 제목 만큼이나 난삽한 주제가 도무지 경주엑스포를 찾는 상당수의 관람객들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퓨전도 좋고 순수예술이든 대중예술이든 상관없다. 동서양과 시공을 넘나드는 작품이라지만 엑스포 관람객이 이런 주제를 소화하기에는 공간이 열려있고 객석이 너무 산만하다.
전시작품들 하나 하나가 '왜' '어떻게' 그곳에 걸려 있는지를 이해할수 없는 관객들에게 엑스포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루브르나 대전엑스포같은 유명세나 볼거리를 주지 못하면 그 분위기에서라도 관람객들을 납득시켜야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예산과 공을 들여 준비한 엑스포인가. 입장객들이 새벽부터 몇 시간씩 길에서 시달리며 찾은 엑스포를 또 하나의 '놀이공원'쯤으로 생각한데서야 말이 되겠는가.
◈쾌적한 관람환경도 급선무
케네디 전 미국대통령의 보좌관 오거스트 헥샤는 "국민의 문화 수준을 높여주는 것은 전시효과를 노리는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차세대를 위한 장기투자"라고 했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고 학교나 각급 단체 등에 떠밀리다시피 찾은 관람객들이 엑스포장을 메운다고 국민들의 문화 수준이 향상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엑스포장에서 보는 즐거움이 기다리는 긴 시간을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을때 엑스포장은 더욱 활기를 띨 것이다. 몇 시간을 오가며 시달리더라도 시내 극장이나 전시회와는 또 다른 감동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엑스포장을 찾는 관람객들이 쾌적하게 공연을 보고 동참하며 동감할 수 있는 엑스포 관람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 엑스포 1일 적정 관람인원이 몇 명인지, 관람에 필요한 시간은 얼마인지에 대한 합리적 기준도 제시해야 한다. 관람객 동원보다 관람객들의 관람 여건 조성이 먼저란 말이다. 이와함께 이번의 가상현실 극장처럼 경주 엑스포를 상징하는 문화 인프라를 하나씩이라도 축적해 나가야한다. 경주엑스포의 정례화, 상설전시를 위해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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