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철학'. 박사과정을 밟을 당시, 필수과목도 아닌 이 과목을 수강하라는 지도교수의 권고형 명령이 떨어졌을 때 나는 마치 심장이식 수술진단을 받은 느낌이었다. '철학'. 듣기만 해도 낯설고 피하고 싶은 과잉친절 같지 않은가?
수업 시작과 함께 나의 예측을 무색하게 하는 일들이 벌어졌다. 손수레에 책을 가득 싣고 와서 학생들에게 대여하며 힘찬 노력을 당부하는 유태인 노교수의 빈틈없는 수업의지에서부터 난해한 문장과 대화가 오갈 때마다 나의 이해를 거듭 확인하는 끔찍한 배려(?)는 나의 모든 감각을 혹사시켰다. 학기 내내 계속된 이 사태는 덩치 큰 미국학생들 등 뒤에서 졸거나 딴 짓을 할 유일한 피안(彼岸)의 순간마저 앗아가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수업은 학생보다는 교수의 노력을 더 요구하도록 구성돼 있었다.
한증막같은 한 학기가 그 꼬리를 보일 무렵, 나는 또다른 사태에 직면했다. "김,명예로운 학점을 받지 않을래?" 닥터 셜미스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아주 아득한데서 들리는 소리 같았다. 명예로운 것이 아니어도 좋다는 내 마음의 외침이 그의 눈길 앞에서 "네"로 변신하는 순간 다 익은 희망은 불다 놓쳐버린 풍선처럼 내게서 멀어져 갔다. 학점은 유예됐고 24차례의 개인수업이 그의 집에서 시작됐다.
방학을 반납한 것은 불쌍한 나만이 아니란 걸 곧 알게 됐다. 몇 명의 미국학생들도 우둔한 지성을 그로부터 교정받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닥터 셜미스가 암으로 입원한 병원으로 수업오라는 해괴한 연락을 받았고, 입원실에 들어섰을땐 한 학생의 수업이 끝나고 있는 상황이었다. 코에는 호스,팔에는 링거주사가 꽂힌 살벌한 상황에서 그는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세상에!"
그것도 잠시,진지한 수업분위기는 성스럽기까지 했다. 돌아오는 길, 세상이 그토록 아름답게 보일 수가 없었다. 그해 여름이 초록빛을 떠나보낼 무렵,나도 그를 남쪽 휴양지로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동정받지 않은 B학점을 받았다.
〈대구교육대 교수.미술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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