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중기 기자의 시네마&라이프-눈물과 한국인

대체로 눈물이 많은 편이다.영화를 보다 시도 때도 없이 흘리는 눈물에 난감한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단체 관람온 여고생 틈에서 '챔프'를 보면서 펑펑 운 고교시절의 기억은 차라리 악몽에 가깝다.

얼마 전 시사회에서 본 영국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도 그랬다.

'빌리 엘리어트'는 광산촌에서 자란 11세 소년이 발레리나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일찍 엄마를 잃은 소년은 노조 파업을 주동하는 아버지와 형,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두고 있다.

발레는 동성애자나 여자들이 하는 것이라며 못하게 하는 아버지와 형. 그러나 주체할 수 없는 열정으로 발레에 빠져드는 소년. 결국 아버지는 굴복하고 아들의 재능을 키워주려고 한다. 그러나 런던에 갈 차비를 마련할 길이 없는 아버지는 고심 끝에 노조를 등진다. "배신자"라는 동료들의 비난을 뒤로하고 회사로 복귀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눈물샘을 쿡쿡 찔렀다.

영화를 많이 봐서 드라마 구조에 대해서는 웬만큼 아는 편이다. 영화 시작한 지 5분만되면 결말까지 쉽게 예상된다.

'빌리 엘리어트'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은 왜일까?최근 몇 년 사이 최루성 영화들이 매년 한 두 편 나오고 있다. '편지'나 '약속'에 이어 오늘 '하루'가 개봉됐다. 대부분 뻔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최루성이 아니라 최루탄같이 강력하게 눈물을 쥐어짜는 구조다.

관객의 마음을 동요케 하는 몇 가지 사연들을 제시하고는 "자! 지금부터 손수건을 준비하시고…. 우세요!"라고 신호를 보낸다. '편지'에서는 죽은 남편의 비디오로 보내는 편지가, '약속'에선 전도연이 애절하게 부르는 "여보" 장면이 바로 그 신호다.

'하루'의 눈물신호는 남편이 떼 온 아기의 주민등록등본 장면이다. 어렵게 낳은 아기. 그러나 무뇌아로 며칠 밖에 살지 못한다. 탄생 순간 죽음을 맞게 된 아기. 아빠는 황급히 병원을 뛰쳐나간다. 그리고 돌아온 그의 손에는 종이 한 장이 들려 있다.

그것은 그들의 이름 아래 막 태어난 아기의 이름이 적힌 주민등록등본이다. 낳자마자 떠나보낼 수밖에 없는 젊은 부부가 관객에게 보내는 '울기 시작' 신호다.

요즘 관객은 줄거리 정도는 훤히 꿰고 영화를 본다. 그럼에도 이런 신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영화 제작자들도 이를 알고 있다.

그래서 '엄마 찾아 삼만리'에서부터 최근 영화까지 내용만 다를 뿐 뻔한 스토리의 최루성 영화가 끊이질 않고 있는 것이다. '미워도 다시 한번'을 10번이나 보고도 또 울 수밖에 없는 눈물 정서. 아마도 우리 한국인의 몸에는 어쩔수 없는 '신파의 피'가 흐르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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