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마음의 구조조정

최근 한국 경제는 주식 시장의 반등으로 모처럼 활기를 되찾는 양상이다.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상해(上海)에서 내비친 "우리도 이렇게 하면 좋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곧 북한이 경제적 개방을 가속할 것이며 이는 우리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파행적 정치, 위축된 소비 심리와 정책 운영의 실패, 만연되어 있는 도덕적 해이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러한 진단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내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마땅한 처방과 회복이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연 신자유주의 원칙에 영향을 받은 구조조정이 처방전의 핵심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이 외형적 조정에 그친다면 오히려 환자의 호흡기를 떼어버리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아르헨티나가 약10년 전 메넴 정권 때 민영화로의 구조조정과정에서 우량 기업들을 대부분 외국 기업에 팔아 넘긴 후유증으로 오늘날 드디어 총체적인 위기에 봉착한 것을 보라. 그러나 그들 중 깨어있는 자들은 말하기를 "더욱 위기스러운 것은 나라의 어려움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한 이기주의에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 지금 요구되는 구조조정의 대상은 다름아닌 바로 우리의 '마음'이다. 문제 제기는 이것으로 이미 충분하다. 이제는 제기된 문제를 가슴에 끌어안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풀어나가는 문제 해결자들이 필요하다. 결혼 자금 마련, 자기집 갖기와 자녀 교육, 노후대책 등으로 왜 사는지도 모르는 채 세태에 휩쓸려 가는 그저 그런 인생이 아니라 높은 도덕성과 땀 흘림으로 세상을 따뜻하게 지펴 나가는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가 되자는 것이다. 내 한 몸 내 가족 챙기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이웃을 중시할 때 비로소 제로섬 이상의 부유(富裕)가 일어난다는 비밀을 깨닫는 것은 단지 현자들만의 몫만은 아닐 것이다.

우리 도내 한 대학에서 일어난 훈훈한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최근 경제난으로 돈이 없어 올 봄학기 기숙사에 입주하지 못할 학생들이 많았다. 이에 한 학생이 학교 인트라넷에 그들을 위해 학우들이 나서서 자기 수입의 전부 혹은 일부를 떼어 돕자는 글을 올렸다고 한다. 돈 많은 사람이 없는 사람 적선하는 그런 차원의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자신의 친구요, 평생의 동역자이기 때문에 지금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로써 기숙사 입주금 문제가 해결된 것은 피상적인 결과에 불과하고 먼저 이 운동을 통해 그 동안 학교에 무심했던 여러 학생들이 그 주창자의 뜻에 감동을 받고 자신을 뉘우치고 협력하는 정신적 부흥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경제난으로 잔뜩 움츠린 세상이 아름답게 변화되는 단서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 인간의 역사는 먹고 사는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왔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을 결정하는 것은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그 시대의 정신과 결단이다. 이는 21세기의 한국 경제 발전을 위한 묘책이 역설적으로 기존 패턴의 경제 정책만으로 국한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 최근 학문간 공동연구가 첨단 분야를 잉태하듯이 경제 전문가는 역사, 종교, 문화, 기술 등 분야별 전문가와 더 적극적으로 협동해야 한다.

효율성만을 강조하는 차가운 시스템이 아니라 거기에 '우리'라는 공동체의 연합을 중시하고 특히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감동을 더하자. 우리의 마음이 거듭나는 것이야말로 모든 사회 병리 현상의 궁극 해결책이다. 2001년 새해를 또다시 천민자본주의의 톱니바퀴로 살아갈 것이냐, 아니면 높은 도덕성과 비전을 가지고 경제를 다스리며 살아가는 자가 될 것이냐는 바로 우리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다.

권오병(한동대교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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