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시험을 대학 지원의 자격 기준으로만 삼겠다" "총점 대신 등급 및 영역별 점수로 성적을 표기해 1, 2점에 당락이 엇갈리는 불합리성을 없애겠다". 교육부가 수능 등급제를 발표하면서 자신있게 내놓은 약속이다.
1999학년도 이후 수능이 갈수록 쉽게 출제돼 급기야 2001학년도에는 소수점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상황에 빠지자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 그러나 수능등급제 역시 대학별 전형에서는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하고 말았다. 오히려 수험생들이 차야 할 족쇄만 이중으로 두터워졌다는 비판마저 있다.
대학들이 제 편한대로 받아 들이기 때문. 대학들은 그 이전에도 고심 끝에 나오는 정부의 새 입학 전형 제도를 늘 그런 식으로 구부려뜨려 왔다.
◇수능 성적표 상의 등급제
수험생들이 받게 될 수능 성적표에는 영역별 원점수, 변환 표준점수, 백분위 점수, 영역별 등급, 5개 영역 종합 등급 등이 표시된다. 총점은 표시하지 않는 것. 그러나 '눈 가리고 아웅'이다. 영역별 점수와 변환 표준점수를 합하면 총점은 간단히 알 수 있다.
수험생용 성적표에는 원점수의 소수점 이하까지 표기하되, 대학에는 정수로만 제공한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믿을 바가 못 된다. 소수점 이하도 대학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알 수 있기 때문. 지원할 때 성적표 사본을 제출하라고만 해도 그런 쯤은 쉽게 알 수 있다. 등급제의 효과를 의문스럽게 하는 부분이다.◇전형 과정의 등급제 효과 상실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쓰기 나름. 수능등급제라고 예외는 아니다.
전국 192개 대학 중 정시모집 때 등급제를 활용하는 대학은 고작 22개에 불과하다. 수시 때 최저 학력기준으로 삼는 대학도 38개에 불과하다. 모집정원 채우기에 급급한 중하위권 대학은 아예 쳐다 볼 생각도 않는다.
활용하는 방법을 보면 등급제의 허상은 더 잘 드러난다. 서울대 경우 수시모집은 2등급, 정시모집은 1등급 혹은 2등급 중 2개 영역 만점자, 또는 최상위 3% 이내 등으로 지원자격을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모집 단위별로 3, 4개 영역별 점수를 활용한다.
대성학원 이영덕 평가실장의 설명을 들어 보자. 서울대 의예과를 예로 들면, 지원 자격 검증을 통과한 수험생들에 대해서는 수능 성적 중 수탐1.과탐.외국어 등 3개 영역 점수를 반영한다. 만점은 232점. 그러나 수능 성적만으로 2배수를 뽑는 1단계 전형을 통과하려면 231점은 돼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등급상 지원자격을 갖춘다 해도 실제 전형에서는 수능 점수가 최고의 잣대라는 이야기.
서울대 뿐 아니라 수능 등급제를 활용하는 대부분 대학도 이처럼 등급과 점수를 함께 반영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수험생들이 수능 점수에 더 매달리도록 만든 것이다.
◇또다른 부작용
수능등급은 이른바 스탠더드 나인(standard nine) 방식으로 수험생들을 구분, 9개로 표시된다. 상위 4%가 1등급, 7%가 2등급, 12%가 3등급… 하는 식이다.
첫번째 문제는 등급 구분선의 바로 밑에 놓이는 수험생들. 소수점 이하 차이로 등급이 떨어져 원하는 대학에 지원조차 못해 보는 수험생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들의 불만이 엄청날 것이지만, 등급으로 나누는 한 방법이 없다. 여기에 대해서는 교육부.평가원.대학 어느 쪽도 시원한 설명을 않고 있다.
또하나 예상되는 문제는 대학들의 착각. 대학 내 학과 사이에도 합격점이 30점 이상 차가 나는 현실에서 평균적인 합격선에 맞춰 일정 등급으로 지원 자격을 제한했을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격선이 높아졌으니 일부 하위권 학과는 경쟁률이 극히 낮아질 뿐 아니라, 복수합격으로 합격자가 빠져나갈 경우 이를 채울 후보자조차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학과에 관계 없이 최저학력 기준을 정했다가 미달, 정시모집에서 충원한 사례가 작년까지의 특차모집에서 적잖았던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 예상되는 것이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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