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대선직전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일으켰다는 이른바 총풍(銃風)사건은 항소심인 서울고법이 1심판결은 물론 검찰수사를 대부분 부인함에 따라 이 사건 성격자체가 새국면에 접어 들었다.
당초 검찰은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낮자 이를 만회하기위해 당시 청와대 행정관이었던 오정은씨를 주축으로 대북사업가 한성기·장석중씨 등 3명이 철저한 사전모의에 의해 중국서 북측인사를 만나 판문점에서 총격사건을 일으켜 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국기문란 사건으로 규정했었다. 또 당시 권영해 안기부장은 이 사실을 알고도 묵살함에 따라 직무유기했다는 혐의로 각각 기소했다. 1심은 권 전 안기부장의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선 무죄를 선고했고 나머지 검찰의 공소 사실을 대부분 인정했으나 항소심은 검찰의 주장을 배척함에 따라 이 사건은 국기문란이 아닌 한성기씨의 개인 돌출행위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검찰과 1심·항소심의 판단이 각기 다른 이 사건에 대한 최종결론은 대법원의 판결에 달렸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검찰 수사가 다소 무리였고 단순한 해프닝성 사건을 침소봉대했다는 뉘앙스를 풍긴 항소심판결에 주목하고자 한다. 우선 1·2심 모두 무죄를 선고해 권영해 전 안기부장의 직무유기죄가 배척된 건 어찌됐건 검찰수사가 너무 의욕만 앞세워 사실관계 입증에 소홀했다는 점에서 검찰은 깊은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는 특히 이 '총풍사건'은 현정권이 야당의 도덕성 흠집내기로 신랄하게 비난해온걸 감안할 때 자칫 검찰이 여당편들기에 앞장섰다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란 점을 이번 기회에 통찰해볼 일이 아닐까.
더욱이 항소심은 이 사건 자체를 국가기관원인 청와대행정관 오정은씨가 주도하고 안기부장의 묵인아래 이뤄진 국기문란사건이 아니라 대북사업가 한성기씨가 우발적으로 일으킨 개인 돌출행동으로 규정한 것은 검찰수사의 구도자체를 전면 부인한 것이다. 물론 대법원판결을 남겨뒀지만 이 대목은 검찰 스스로 다시금 성찰해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하는 게 우리의 시각이다. 최근 한빛은행대출사건 외압의 장본인으로 박지원 전 장관을 지목했다가 되레 수뢰혐의로 기소된 이운영씨 사건에서도 법원은 검찰이 증인들에게 세무조사를 운위하면서 뇌물공여의 자백을 받아낸 건 명백한 잘못이라는 지적도 있었던 터이기에 하는 말이다.
무엇보다 정치권에서 이 사건을 야당압박용으로 설왕설래하면서 정치쟁점화하는 건 이젠 자제해야 한다. 이 사건 성격이 달라진데다 최종판결을 아직 남겨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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