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휠체어 마라톤 대회(10회)가 열렸던 지난달 29일 대구 두류공원. 미국·일본 등 8개국 42명과 국내 377명 등 419명의 선수들이 비를 무릅쓰고 감동적으로 펼쳐졌다. 전국의 장애인들과 관련 단체 사람들이 응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숫자를 차지한 것은 자원봉사자들. 이들은 한마당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응원의 함성, 앰프 음악, 마이크 소리까지 뒤섞여 떠들썩한 스탠드 한 쪽에서 그들을 만났다.
◈의무봉사는 10~40시간 불과
"오늘은 자원봉사 바람 맞았어요. 너무 늦게 연락 받아 다른 데 뺏겼죠. 그럼 뭐 어때요? 누가 하든 도울 수 있으면 되죠". 대구 청소년 자원봉사센터 동아리 연합회장 박연상(경북공고 3년)군은 비 때문에 장애인 걷기 행사가 취소돼 그마저 도울 수 없게 된 것이 더 섭섭하다고 했다. 동아리 대표 정기 모임을 겸해 모였던 10여명의 학생들도 마찬가지. 자유재활원 장애인들을 만날 수 있은 것만으로도 즐거워 하고 있었다. 매주 봉사해 온 터라 모두 아는 얼굴들. 한참을 박수치고 어울려 떠들어댔다.
이날 모인 동아리 대표들은 한결같이 봉사활동 '마니아'로 불릴 만했다. 얼마 정도의 시간을 들여 활동하느냐고 물었다. "계산 안 해봤는데요". 몇번을 되묻고서야 "일년에 한 500시간 정도 될까요?"라며 쑥스러워했다. 중·고교생들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봉사활동은 불과 10~40시간. 의무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것이다.박군 경우 거의 매주 토·일요일을 자유재활원에서 보낸다고 했다.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재활원에 도착하면 오후 2시쯤. 소속 동아리 '울림'의 친구들과 곧바로 활동을 시작한다. 점심 식판 치우고, 시설 안팎 청소하고, 빨래까지 하는 건 자동. 벌써 오후 7, 8시쯤 된다. 일요일엔 오전 10시쯤 다시 가 종일 움직인다. 활동에 어지간히 물미가 트이고 보니, 어떨 땐 아예 재활원 교사 역할을 대신 맡기도 할 정도.
이 재활원의 자원봉사 담당자 이정진씨는 침을 말렸다. "울림 학생들 정도면 전혀 신경 안써도 돼요. 오래 해왔고, 워낙 열심이라 저희들 끼리 둬도 어지간한 어른들 몫은 얼마든지 하거든요".
◈회원 1년뒤 20%만 남아
작년 중3때 친구들끼리 만든 동아리 '천하무적'의 대표인 고1년생 유주화양이 거들었다. "처음엔 시간 채우려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 너무 재미있어서 아예 동아리 대표까지 맡았죠. 봉사는 한번 재미 붙이면 경쟁적으로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유양의 이야기는 대구 청소년 자원봉사센터 조여태씨가 확인해 줬다. "1학기 초에 봉사자를 모집해 교육하고 활동하다 보면 연말엔 20%도 채 안 남지요. 그러나 이들은 모두 열심입니다".
이 센터 소속 동아리는 20개나 된다(my.dreamwiz.com/tgbongsa). 제대로 활동하는 회원만도 300여명. '울림'처럼 회원이 56명이나 되는 동아리도 있지만, 5명 안팎이 어울린 동아리도 있다. 같은 학교 학생끼리 만든 것도 있고, 여러 학교 학생들이 어울려 만든 것도 있다. 신명여고팀 'SM'의 김지은양은 "학교로 요청 오는 일에만 참가하다 보니 부족한 느낌이 들어서 지난달에 2년생 15명이 모여 동아리를 만들었다"고 했다. 모여서 하다 보니 가속도가 붙어 매주 활동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동아리들은 이름도 발랄했다. 일등감자, 누렁이, 손짓사랑, 웹끼… '문제집'이라는 것도 있길레 "문제아 집단이라는 뜻 아니냐"고 물었다. 대표 김건범(강북고 2년)군이 보인 표정은 "그럴 줄 알았다"는 식. 원화여고생 11명이 지난달 가입한 뒤 이름을 바꾸자는 제의가 뜨겁다고 했다.
"어렵지 않아요? 중고생들은 워낙 바쁘잖아요. 학원에도 가야하고…". 봉사의 어려움 쪽으로 화제를 돌려 봤다. '내필'(내가 필요할 때)의 서유진(중리여중 3년)양의 대답은 달랐다. "학원도 가고 공부도 해야 하는데… 하고 부모님이 처음엔 걱정하셨지만 활동 내용을 알고는 오히려 적극 권하십니다".
◈봉사 장소 부족이 어려움
"장애인이나 노인들과 어울리는 것이 뭔가 어색하고 불편하지 않아야?" 이 질문에는 모여 있던 모두가 입을 모았다. "뭐가요? 집에 계신 할머니나 뭐가 다릅니까? 조금씩 불편하신 것 말고는 우리랑 차이가 없잖아요? 오히려 우리가 도울 수 있다는 게 고맙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오히려 봉사할 곳이 부족한 것이 더 큰 어려움이라고 그들은 말했다. 대학생보다 도움이 덜된다며 중·고생을 꺼림칙해 하는 풍토, 원생들과의 위화감을 우려하는 태도 등이 걸림돌이라는 얘기였다. 이와 관련해 자유재활원 이정진씨는 "중고생 봉사를 활성화하려면 학교, 시설, 봉사 매개기관 등이 머리를 맞대고 전체 틀부터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야기를 마치며 나설 때 물었다. "봉사하는 이유가 뭐지요?" "그냥요, 재미도 있고 즐겁잖아요". 그들의 밝은 표정에서 모든 중고생들이 의무가 아니라 즐거움으로 봉사할 수 있는 때가 그리 멀잖아 올 수도 있으리라는 희망이 보이는듯 했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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