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농촌 행정공백 심화

구미의 김정식(43)씨는 어린 아들을 내년에 몇㎞나 떨어진 초등학교에 입학시켜야 한다는 생각만 하면 걱정에 짓눌린다. 좌골신경통으로 고생하는 칠순 노모의 일까지 생각이 겹치면 울화통이 치민다. 가까이 있던 보건진료소가 구조조정인가 뭔가 해서 인력이 모자란다며 걸핏하면 문을 열지 않아 허탕치기 일쑤이기 때문.

◇농촌을 더 황폐화시키는 구조조정=공공기관들의 잇딴 폐쇄.축소가 안그래도 떠나는 농촌의 '공동화'(空洞化)를 더 가속시키고 있다. 말은 복지농촌 만든다면서 실제로는 점점 더 살기 어렵게 만들고 있는 것.

이런 공공기관 폐쇄.축소는 1982년 학교 통폐합으로 시작됐었다. 그후 IMF사태를 거치면서는 보건진료소 폐쇄, 파출소 통폐합, 읍면 사무소 폐쇄(자치센터 전환) 등으로 이어졌다. 공공기관들이 싹쓸이 되고 있는 것. 보건.교육.치안.행정까지도 등을 돌리고 있는 중이다. 농민들은 이제 무슨 일을 보려 해도 훨씬 많은 다리품을 팔아야 하게 됐다.

농촌 인구는 갈수록 노령화 돼 가는데, 이것이 정말 바람직한 조치인지 모두들 혀를 내두르고 있다. '효율성 만능주의가 농촌을 망치는 것은 아닐까?' 하고.

◇학교 통폐합=농촌 인구가 감소하자 1982년부터 작년까지 전국적으로 2천700여개 학교가 폐교됐다. 반면 도시지역에는 2천개 가까운 학교가 신설됐다.

경북 도내에서는 초교 187개와 오지 분교 317개가 문을 닫았고, 307개 학교가 분교장으로 낮춰졌다. 중학교도 본교 9개 분교장 3개가 폐교됐다. 구미시내 초교 경우, 오로분교(장천, 1993년), 동부분교(선산, 95년), 괴곡분교(해평, 95년), 무곡분교(무을, 올해) 등 10개가 1993년 이후 문을 닫았다.

◇보건소=의보통합과 의약분업으로 의료비 부담은 늘었다. 그러나 1998년 이후 전국에서 47개 보건지소와 114개 진료소가 폐쇄돼 농민들의 진료 불편은 가중됐다.경북 경우, 1997년 당시 진료소가 330개에 이르렀으나 그후 20개가 없어졌다. 상주(봉산) 고령(옥계) 경주(물천) 의성(양곡)은 한개씩을 잃었지만, 청송은 2개(상의.덕천), 예천은 3개(구계.은산.괴당), 성주는 5개(명포.마월.오천.봉학.자산), 봉화는 무려 7개(도촌.어지.동양.갈산.북곡.개단.애당)를 박탈 당했다. 보건지소도 울진이 2개(북면.근남)를 폐쇄 당했고, 경주(감포.양북) 영주(풍기.봉현) 예천(상리.하리)은 한개씩을 잃어 남은 것은 216개에 불과하다.

학교 폐교처럼 보건소 폐쇄도 많은 저항을 불러, 오지 주민들은 '의료 기본권 쟁취를 위한 탄원서'를 만들어 진정하고, 시청.군청으로 몰려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봉화 오지에 사는 이상수(65)씨는 "보건 진료소 이용자 상당수가 자녀들이 객지로 떠나 홀로 남은 노인들"이라며, "이런 짓은 '앉아서 죽으라'는 얘기나 다를 바 없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읍면 사무소에 파출소까지=이제는 드디어 읍면 사무소 폐쇄 작업까지 한창 진행되고 있다. 놀이방.체력단련실.회의실.컴퓨터실 등을 갖춘 자치센터로 전환한다는 명목. 이런 센터는 현곡(경주), 아포.어모(김천) 등 전국 35개 읍면에서 시험 운용되고 있다. 올 하반기부터는 전국 1천856개 읍면 사무소를 없앨 계획.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 읍면 사무소에서 볼 수 있던 업무의 70% 가량을 시청.군청까지 가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자치센터를 만든다고 해서 꼭 득이 있는 것도 아닌 듯하다. 시범 운영 센터의 사랑방.헬스장.꽃꽂이.서예교실 등을 찾는 사람은 고작 하루 3, 4명에 지나지 않기 때문. 읍면 사무소만 뺏기고, 자치센터는 개점휴업 되는 상황이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덩달아 파출소도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전국에서는 이미 1998년 7월 233개, 작년 6월 317개 등 550곳이 경찰관 1명뿐인 '분소'로 바뀌었다. 경북 도내에는 26개가 미니 파출소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사건이 나면 다른 지역 파출소 경찰관이 수십km나 달려 와야 하게 됐다. 치안 조차 불안해진 것이다.

청송의 심호섭(38)씨는 "효율성 만능주의가 농촌 자체를 망치고 말 것"이라고 개탄했다.

구미.김성우기자 swki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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