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을 두는 사람은 자주 대국할 기회를 가져야 대국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으며 어깨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서 유연해지고 국면이 바로 보인다. 바둑이 아닌 다른 일들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의 집권여당은 오랜 세월동안 야에 머물면서 간난신고와 와신상담 끝에 오늘의 자리에 오른 분들이 모인 당이다. 이들이 겪었던 고난과 좌절과 투쟁은 범인으로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또 흉내내어서도 안될 엄청난 것이었다. 이런 분들이 정권을 잡게 되었을 때, 우리는 이들의 오늘이 있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모쪼록 이들이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들이 좋은 쪽으로 결실을 맺게 되기를 간절히 빌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으로는 이분들이 너무 오랜만에 대국의 자리에 임하게 된 까닭으로 혹시나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가거나 아니면 명국(名局)을 두어야겠다는 강박감과 공명심이 앞서서 무리수를 두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 감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었다. 정치에 있어서 한번의 무리수가 가져올 파장과 비극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알기에 우리는 조심스러운 눈길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참고 기다리면서 숨을 죽이고 긴장해왔다. 혹시나 치명적인 무리수가 나온다면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이어질 만큼 우리의 처지 또한 긴박했었다.
지난 해 의약분업을 실시한다고 온 나라가 시끌벅적할 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한발 뒤로 물러서서 이것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해주기를 많은 사람들이 바랐고, 필자 역시 이 지면을 통해서 충언을 드린 바 있다. 하지만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고 강공(强攻)으로 밀고 나갔다. 헛수였다. 결과는 보지 않아도 뻔했다. 유보해도 괜찮을 듯 싶은 시책에 왜 정권의 운명을 거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만약 조그마한 구멍이 제방을 무너뜨린다면 이것이 바로 그 구멍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감으로 안타까워했다.
금년 초에는 이분들이 느닷없이 '강한 정부'를 들고 나왔다. 도대체 어떤 것이 강한 정부인가 하는 의구심과 함께 '여론을 존중하는'이라는 형용사가 붙어 있어서 더욱 의아스러웠다. 여론을 존중한다면 쉽게 말해서 백성의 눈치를 보겠다는 뜻인데, 눈치를 보면서 강하게 나간다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곧 그 윤곽과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한 '강한 정부'의 후속 수를 보고 이것은 의약분업이란 헛수보다 더한 무리수요 악수라는 직감이 들었다. 아니나다를까 언론 길들이기, 3당 정책연합 같은 졸수(拙手)들이 연발되어 자충수가 나오기 일보 직전의 아슬아슬한 순간에 이르렀다. 여기에서 더 한 번의 악수가 나온다면 이성을 잃고 급기야는 자충수(自充手)를 두기 마련이고, 이것이 나오면 판을 거둬치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다행히도 우리 국민은 어리석지 않았다. 4.26 기초단체장 재보선을 위한 선거를 통해서 국민은 분명히 자충수를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 것으로 민심이반(民心離反)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와 있는지, 그리고 이것을 알았으면 이분들도 모골이 송연해서 정신을 바짝 차려 비극적인 자충수를 경계할 것이다. 이것이 국민의 바람이었으며 이 바람이나마 이루어져야 국민도 살고, 정권도 산다.
의연하게 국정에 대처한다면 국민의 마음을 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대통령은 간곡한 언사로 당부했건만 당에서는 그 다음날인 27일에 있었던 집권여당의 후원회에서 100억대의 후원금이 걷혀서 '경제가 어려운데도 기대를 넘어섰다', '정당 후원회 사상 경제인들이 가장 많이 참석했다'는 따위의 자랑 섞인 발표를 했다.
국민의 메시지도 자칫 아무런 보탬이 못 될까 걱정이다. 집권 여당에서는 '당은 지금 실의에 빠져있다','민심 회복을 위한 특단의 대책','대선 예비주자들은 행보를 자제해야 한다'는 등의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왠지 믿어지지 않는다. 왜일까? 국민의 마음에서 왜일까 하는 의구심이 걷히지 않는 한 절대로 강한 정부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강한 정부의 그 힘은 다름 아닌 국민의 신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한양대 교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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