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일을 하고, 그런데도 모함을 받다니… 그건 훌륭한 일이다". 프랑스 작센 츠이타우 시청벽에 라틴어로 쓰여있는 구절이다.
지난해 6월 방영된 MBC스페셜 '파리.평양.서울, 떠도는 자의 꿈'의 주인공 이유진(62)씨가 그런 경우가 아닐까. 26년간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파리에서 망명생활을 하는 이유진씨가 자신의 기구한 인생유랑을 토로한 '나는 봄꽃과 다투지 않는 국화를 사랑한다'(동아일보사 펴냄)를 냈다.
그는 프랑스 유학중 70년대 동백림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를 했다가 '반체제인사'로 찍혔고, 망명을 원하는 후배를 프랑스당국에 인도하고 그의 딸을 프랑스가정에 소개했다는 이유로 '아동인질범'에 '북괴 공작원'으로 몰렸다.
'홍세화씨'처럼 유학을 왔다 파리에서 택시운전.콩나물 장사.문부성 공무원 등을 하며 살아온 이씨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양심에 따라 곤경에 처한 후배를 도와준 것 뿐이었다. 그런데 그를 낳고 키운 독재치하의 조국은 그를 빨갱이로 몰았다. 파리의 동포들은 아예 그를 피했고, 한국인 성당에 가도 신부나 신자들도 그를 외면했으며 심지어 파리의 민주화운동인사들은 자기들과 관계가 없다는 성명까지 발표했다고 한다. 오히려 기댈 곳 없는 그를 위로해주고 도와준 것은 프랑스 사람뿐이었다.
그는 한국인의 '레드 컴플렉스'에 얽힌 기막힌 얘기 몇가지를 들려준다. 몇년전 한국의 시인들이 파리에 찾아와 '친북인사'와는 자리를 함께 할 수 없다며 피해버린 일이나 70년대 남북한 학술대회에서 한국학자들이 북한학자의 얘기도 듣기전에 삿대질부터 해대는 일 등등….
그는 권위주의 시대의 70년대는 남이나 북 모두 다를바 없었다고 한다. 고향인 평양을 방문했을때 그가 북한의 안내원과 나눈 대화다.
"김정일 동지를 수령님의 후계자로 정했다지요? 인민의 의사를 물어봤나요?" "물론이디요". "아니 2천만 인민이 다 찬성했다는 말인가요?. 저같은 바보가 한 사람도 없었단 말입니까?" "무슨 말씀인지?". "저같으면 반대했을 텐데…"
북한사람앞에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저자가 30년 가까이 친북인사라고 해서 귀국이 허락되지 않는 것은 우리 나라가 사람답게 살기에 충분한 세상이 아니기 때문. (시인 신경림)
박병선기자 l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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