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벌꿀 채취업자들의 삶과 애환

꿀처럼 달콤할 것만 같은 벌꿀 채취꾼의 삶, 평범한 보통사람들의 인생살이에 비해 달콤하지도 않을 뿐더러 오히려 씁쓰레한 애환이 깃든 삶을 살고 있다.

경남 합천군에는 아카시아 꿀을 따기 위해 이달 초부터 전국에서 약 300여팀이 몰려들고 있다.

이는 군 면적의 73%가 산지인데다 그 중 약 20%를 아카시아와 밤나무가 메우고 있고 요즘이 아카시아꽃이 제일 활짝 피는 때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트럭에 살림도구와 벌통을 싣고 3월 초부터 제주도 유채꽃을 시작으로 8월 말 강원도 싸리꽃이 질때까지 꽃을 따라 6개월간 떠돌이 생활을 한다.

1년중 절반을 가족과 떨어져 산골짝이나 도로변 텐트에서 새우잠을 자고 현지에서 채취한 꿀을 조금씩 팔아 이동 경비로 쓰고 있는 신세다.

전국을 떠돌다보니 그 지역 인심도 가지가지. 어떤 곳은 텃새가 대단하고 인심좋은 마을에서는 잔치 음식까지 대접받기도 한다는 것.

그러나 때로 채취꾼들 간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자리다툼을 하는가 하면 강도를 맞아 불안에 떨기도 한다.

합천군 율곡면 와리 지릿재에서 벌통 120본으로 꿀을 따고 있는 28년 경력의 지리산농산 대표 이광엽(54·전북 남원군)씨 부부는 꿀채취꾼 사이에서도 널리 알려진 대부격. 그동안 꿀을 판 돈으로 노모를 모시고 큰 아들 재승(25·군입대)군 등 세자녀를 모두 대학까지 보냈다고 한다."노모·아이들과 떨어져 사는 것이 가슴 아프다"면서도 "탈없이 잘 자라준 자녀들이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일 새벽, 인근에서 함께 꿀을 따던 동료 이모(54·경북 울진군)씨가 강도들에게 폭행을 당하고 금품을 빼앗긴 사실에 "꿀벌보기 부끄러운 못된 짓"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때로는 지역 토박이들이 떼를 지어 몰려와 흉기로 위협하는가 하면 자고 일어나면 텐트가 찢겨져 있는 일을 수 없이 겪었다고 한다.

이같은 사고를 막기 위해 몇몇 사람들이 함께 이동한다.

이씨는 IMF이후 실직돼 채취꾼으로 나선 3년 경력의 양순섭(42·전북 순창군 동계면)씨 등과 함께 팀을 이뤄 생활하고 있다.

3일에 한번씩 꿀을 따는데 이날은 벌들이 일나가기 전인 새벽 5시에 일어나 품앗이로 한다.

유밀이 좋을 경우 벌통 100본에 25말(500ℓ) 정도 채취해 이씨의 경우 연간 2천여만원의 벌이가 된다고 했다.

부인과 함께 전국을 떠돌았던 이씨 부부의 생활도 곧 청산될 것이라고 했다.

오는 2004년부터 중국산 꿀이 수입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30여년을 꿀벌과 함께 살아온 이들 채취꾼의 모습도 차츰 사라져 갈 처지에 놓여 "뒤돌아보면 보람과 허탈함이 함께 한다"고 아쉬워했다.

합천·정광효기자 khjeo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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