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와 함께 하는 오후

그 여자가 보내준 시집을 읽고나는 그 여자의 자궁이 없는 것을 알았다

나이 든 폐경이 아니라

애초부터 없었으리란 나의 느낌과 단정이

물론 틀렸겠지만

햇살을 부르면 햇살이 캄캄하게 타 버리는

장미를 잡으면 장미마저 마침내 파삭파삭 말라

집착만 뼈대를 이루는

그 여자의 목소리가 너무 아름다워

그 이후로 달랑 그 여자의 입술을 닮은

성기 하나를 만들어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찰떡 같이 말랑말랑하고 따뜻해

간혹 흥분과 전율을 꿈꾸며 조몰락거리면

온손에 끈적이던 비명과 교성들

참다참다 어느 날

슬그머니 내 그것을 들이밀었을 때

참 이상하다 그 싱싱하던 내것이

몇 번 쿨럭거리다가 맥없이 풀썩

주저앉는 게 아닌가

내 낌새가 진실은 아니겠지만

많은 사내들이 스쳐갔다고 고백하진 않았지만

-김영근 '복제품은 빛난다'

최근 한 현직 중학교 미술교사 부부의 나체사진 공개가 논란에 싸여 있다. 이 논란을 보면서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 시는 시인이 쓴 자신의 시론이다.

여기서 '복제품은 빛난다'는 제목은 역설이다. 복제품은 '그 싱싱하던 내것을 맥없이 풀썩 주저앉게' 만든다는 구절에서 주장하는 바처럼 창조성과 개성이 중요한 것이다. 비록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그것이 복제품인 이상 가짜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김용락〈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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