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왕가뭄 비상

기상 관측 이래 최악의 '왕가뭄'이 계속되는 가운데 그 고통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비는 농경민족에게는 생존의 근원이자 국운(國運)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기우제(祈雨祭)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부터 행해지던 풍습으로, 우리는 삼국시대 이래 조정이나 지방관청, 민간에서 가뭄 때 지내던 생존을 위한 제사였다. 조정에선 왕이 정사를 잘못 본 천벌로 여기고 친히 몸을 깨끗이 하고 이 제사를 지냈으며, 음식을 끊고 거처를 옮겨가며 죄인을 재심리해 무고한 백성을 풀어주기도 했다.

◈우리의 기우제는 150여종에 이른다고 한다. 그중 '산상 분화'는 산 위에서 건초나 장작더미 등에 불을 지르는 방법이다. '불'이라는 양기가 '비'라는 음기를 부르는 '인공 강우'의 주술로서 과학적으로도 전혀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음기가 강한 여자들이 키에 물을 담아 머리에 이고 다니면서 물을 온몸에 맞으며 맹렬하게 춤을 추거나 과부들에게 솥뚜껑을 씌워놓고 필사적으로 물을 끼얹는 방법 등도 우습게 여길 일만은 아닐지 모른다.

◈지금 전국은 가뭄 때문에 그야말로 초비상이다. 양수기로 지하수를 퍼올리고, 레미콘 차량이나 헬기로도 물을 나르지만 밭작물은 말라 죽고 논바닥은 거북등이 돼버린 곳이 많다. 급수차로 낙동강 물을 실어와 농가에 대당 5만원에 파는 현대판 '낙동강 김선달'이 등장해 인기를 끄는가 하면, 기상청은 2007년까지는 실용화하겠다며 이번 주말쯤 구름에 응결핵을 뿌려 '인공 비'를 만드는 강우 실험도 시도할 움직임이다.

◈요즘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에선 대통령의 기우제를 둘러싼 논전이 이어지는 모양이다. 네티즌들 사이엔 앞의 '천벌'론을 펴면서 기우제를 촉구하고, '대통령이 덕이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자연재해를 대통령 1인에게 뒤집어 씌우는 건 짐승보다 못한 생각'이라고도 응대했다. 대통령도 '기우제를 지낸다고 비가 온다면 해보겠다'면서도 '비과학적 대통령이란 얘기가 나올 것 같아 못한다'고 안타까워 했다고 한다.

◈아무튼 과학문명이 발달한 현대에 기우제가 능사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해마다 가뭄이 되풀이되는 데도 변변한 물관리 대책이 없다는 건 큰 문제다. 다산(茶山)은 '애민육조'에서 '모든 백성에게 재액이 있을 때는 불에 타는 것을 구출하고 물에 빠진 것을 건지기를 마치 자신이 불에 타고 물에 빠진 것처럼 해야 하며 구재를 늦춰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재민들과 근심을 함께 하면 백성들이 감동한다고도 했다. 목민관이 제일 우선해야 할 공무가 구재(救災)라는 사실을 잊지 말 일이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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