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가을을 연다-지역 중견예술인 작업현장-(2)소설가 엄창석씨

소설가 엄창석(41)은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의 후미진 작업실에서 가을맞이에 들어갔다. 작가가 이곳 허름한 양옥집을 창작공간 삼아 들어온 것은 지난해 2월. 동인문학상 최종 후보작으로 올랐던 '황금색 발톱'을 탈고한 곳이기도 하다.작가의 산촌 칩거(?)는 그의 작품 경향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혼자 떨어져 있으니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문학의 본질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그는 여기 텅빈 방에서 자주 무상에 잠긴다. 그러다 어느덧 책상에 앉아 작품구상을 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 창밖 산기슭엔 가을바람이 서성대는데 방안엔 작가의 창작열로 아직은 후끈하다.

사실 엄창석은 늘 문단의 주류 경향과는 일정 거리를 둔 작품을 써왔다. 노동현장의 얘기를 담았던 신춘문예 당선작(동아일보 1990년) '화살과 구도'가그렇고, 1992년에 내놓은 중편집 '슬픈 열대'도 1980년대의 시대상황을 반영한 사회성 짙은 작품이다.

그후 8년이란 공백을 거쳐 출간한 소설집 '황금색 발톱'(민음사) 또한 자본주의의 숨은 모순을 폭로한 노작들로, 일상성을 강조한 여성소설들이 문단을휩쓰는 가운데도 관념적이고 중후한 주제들과 끈질긴 정면승부를 걸어왔다.그의 성향을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으로 '후기 자본주의 서설'이란 부제를 단 '황금색 발톱'에서 작가는 문명의 종말로 치닫는 고장난 현실에 마비된 우리의 의식을 통렬하게 할퀴고 있다.

"'슬픈 열대'에서의 사회의식은 여전히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작품들은 겉모양만 달리할 뿐 저변에는 일관된 주제가 흐른다. 그것은 기존 통념에 대한 의심 그리고 세상과 삶에 대한 반성적 사유이다.1990년대 초반 문단의 기대를 모았던 작가 엄창석. 그는 올가을 네거리의 변천과정을 통해 전투적인 삶의 일상을 고찰하는 중편을 매듭지을 계획이다. 전쟁과 삶을 알레고리화한 이번 작품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족적을 남길만한 작품을 내놓을 것"이라는 각오다. 그리고 온겨울을 '사랑과 예술'을 주제로 한 장편에매달릴 작정이다.

그는 장편만큼은 평이하고 서정성있는 문체를 고집한다. 장편은 스토리가 있고 미학적 감동도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황금색 발톱'과 함께나온 자전적 성장소설인 '어린 연금술사'(민음사)도 그처럼 관념과 서정이 어우러진 장편이었다.

서사와 담론을 고집하며 문단의 독불장군 취급을 받기도 한 작가 엄창석. 그의 수작이 올가을 우록 작업실에서 한껏 무르익기를 기대해 본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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