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가짜' 출판물

출판가에서는 요즘 밀리언 셀러 한 권이면 돈방석에 올라앉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이는 '앞으로는 남고, 뒤로는 밑진다'는 푸념이 나올 정도로 광고 공세와 사재기로 베스트 셀러를 조작하는 출판계의 현실을 풍자하는 '비아냥'에 다름 아니다. 요즘 베스트 셀러의 자화상을 들여다보면 참담하다. 책의 내용이나 질보다는 광고와 사재기에 투자할 수 있는 출판사의 현금 동원력이 베스트 셀러를 결정하는 시대가 됐다면 너무 지나친 말이 될까.

▲베스트 셀러는 꼭 '좋은 책'이 아니더라도 당대의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다. 그 때문에 단순히 '많이 읽히는 책'이 아니라 그 경향을 통해 당대의 주된 관심사를 들여다볼 수 있게도 한다. 하지만 요즘은 그 의미가 희석되고 왜곡돼 분노하게 만드는 경우마저 적지 않다. 광고 공세와 사재기에다 대필과 윤문, 조작까지 횡행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한때 재벌그룹 회장들과 인기 연예인들의 자서전이나 수기들이 다투어 나왔다.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의 회고록 등의 책들이 쏟아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 덕분에 대필해 주는 작가와 회사까지 생긴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최근엔 오지에 묻혀 살다가 대중매체를 타고 유명해진 뒤 비극의 주인공이 돼야 했던 '산골 소녀' 이영자양의 아버지가 남겼다는 유고시집이 가짜로 밝혀져 또 한번 충격을 안겨 준다.

▲갑자기 유명해진 딸 때문에 살해되는 엄청난 비극을 맞아야 했던 그가 썼다는 '영자야, 산으로 돌아가자'가 대신 썼던 어느 시인의 양심선언으로 그 실상이 폭로된 셈이지만, 출판계의 이 같은 비양심적인 농간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돈이 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뼛속까지 파먹는 '하이에나'식 이윤 창출과 '한탕주의', 심지어는 영혼까지도 상품화하는 사회 구조는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출판사나 서점은 '지성의 향도(嚮導)'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이 아무리 혼탁하다 해도 '마음의 양식'인 책을 만들고 유통시키는 곳까지 이처럼 썩어서야 될 일인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치관이 뒤죽박죽인 세상에 출판계만 깨끗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지는 모르지만…. 이즈음 출판계에서는 대필해준 작가의 이름을 밝히는 '대필 실명제'도 거론되고 있는 모양이다. 차제에 새 바람이 일기를 기대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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