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부 쌀농업 포기하나

정부가 예고대로 4일 WTO 쌀 재협상 관련 중장기 대책을 발표했으나 이는 사실상 국가의 쌀값 지지 정책 포기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것으로 판단돼, 유일하게 지켜져 온 쌀 농업마저 큰 회오리에 휩싸일 전망이다. 농민들은 이미 올 가을부터 쌀값 폭락 사태가 닥칠 것을 우려하고 있고, 불안해진 정부는 농협을 이용한 수매량 확대를 지난달 29일 황급히 발표했었다.

한갑수 농림부 장관은 4일 열린 전국 시·도 부시장·부지사회의에서 '2004년 WTO 쌀 재협상에 대비한 쌀 산업 중장기 대책'을 발표, "내년부터는 쌀 증산 대신 품질 위주 정책을 펴고 약정 수매제를 폐지한 뒤 시가 매입·방출하는 공공비축제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또 쌀 재고 누적을 막기 위해 논을 다른 작목용으로 바꾸거나 휴경하는 경우 보상금을 지급하는 '생산 조정제'를 도입해 감산도 유도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지역 농정 전문가들은 "품질위주 정책이 포기된 것은 이미 오래 전"이라며, 실제로는 쌀값 지지 정책의 포기를 선언하면서 이같이 포장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전국농민회 총연맹과 농업경영인회 등 농민단체들도 성명을 통해 "농촌 현실을 감안 않고 발표한 졸속 대책"이라며 일제히 비난했다. 한농 경북연합회 관계자는 "쌀 농업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대북 지원 등 효과적인 소비 촉진책을 세워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4일 발표에 앞서 정부는 "쌀 수매가에 대해 국회의 동의를 얻도록 돼 있는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공표해 해마다 해 오던 수매가 인상의 중단을 이미 예고한 바 있다. 농민 반발을 우려해 수매량을 줄이지 않으려면 UR 협상 때문에 정부는 수매가를 낮출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협상에서는 농업 보조금(AMS, Aggregate Measurement of Support) 총액을 10년간 13.3% 감축토록 의무화됐고, 한국 경우 대부분 수매에 사용되는 이 돈의 총액이 줄어 듦으로써 수매량을 줄이지 않으려면 값을 내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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