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시론-가을들판에 서보자

누군가 햇볕정책을 하다보니 한반도에는 9월에도 더위가 가시지 않는다는 농을 했지만 더위가 아직도 그 꼬리를 강하게 흔들고 있는 9월에 가을은 어김없이 성큼 우리들 마음 안에 걸어 들어오고 있다.

정국도 경제도 어렵고 어수선하기만 한 현실이지만 가을은 밝은 얼굴로 우리 앞에 우리들 땀의 결실을 성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마음속에 스스로 이겨 낼 수 없는 갈등에 차 있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가을 들판에 나가 서 있어 볼 일이다.

이유없는 우울증으로 아무런 의욕조차 없어 삶이 부담스럽기만 한 사람도 당장 가을 들판으로 가 볼일이다.

자기 오만에 가득 차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 그 상처의 본의도 모르고 있는 사람도 도심을 걷는 일을 중단하고 가을 들판으로 방향을 바꾸어 보면 어떨까.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가을 들판에 서 보면 스스로 알지 못했던 자기의 일그러진 모습이 조금쯤은 보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처음에는 하나의 씨앗인 것이 하나의 거대한 겸손의 상징이 되어 우리앞에 하나의 말없는 스승으로 서 있는 것을 보면 시인 윤동주가 느낀 자화상의 갈등과 부끄러움이 가슴 밑바닥에서 잔잔히 솟아 오를 것 같다.

지금 가을 들판은 그야말로 황금의 묵상시간이다. 왜 벼들의 마지막 결실의 모습이 황금빛으로 물드는 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그것은 차라리 황금의 기도의 시간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그 황금 물결 앞에 서면 자신이 괴로워하는 모든 이유가 부끄럽고 요령을 피우고 살아 온 자신의 모습을 들키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날지 모른다.

우리는 지금 그런 괴로움이 필요하다. 어떤 무리한 행동에도 '다 살자는 짓'으로 용서하고 그러고도 무표정의 무례로 돌아가는 사람들은 지금 괴로워할 아름다운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가을 들판에서 작지만 스스로의 성찰을 갖는 것은 그것은 아마도 하느님이 다시 한번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기회를 주시는 인간의 축복이 아닌가 한다.

고개숙인 벼들을 보노라면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알게 한다. 여름의 뙤약볕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고문같은 시간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그것들은 안으로 결실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을 온 들판을 출렁거리고 있는 것이다.

누가 그 기도의 물결앞에서 발을 멈추어 오만을 반성하지 않겠는가.

적어도 그 앞에서 너무 많이 생산되는 추곡생산의 양이나 무슨 명목을 빌려 북쪽으로 보내야 한다는 정치적인 계산 같은 것은 잔인해 보인다.

다만 가을 들판을 홀로 거닐면서 떠오르는 낱말은 '감사'라는 말이었다. 사람들은 갈수록 잔꾀를 부리고 나 이외의 사람을 배려하는 것을 귀찮아하며 자연을 혹사하고 산짐승을 몇푼의 돈으로 살생을 하고 놀다간 찌꺼기를 흉칙하게 버려 땅의 숨을 멎게 하거나 오직 욕망만을 부추기는 자극문화에 쉽게 몸을 맡기는 사람들, 남들이 지닌 가치는 무조건 값을 내리고 별것 아닌 지식으로 자기만을 특수화시켜 남과 다른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난무하는 무슨 총 없는 전쟁 속에서 가을 들판은 아무래도 우리에게 감사의 선물인 것 같다.

그래서 황금빛의 결실은 곧 진실의 자극을 회복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싶은 사람들의 소중한 만남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금 우리는 진실의 상실시대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다. 누구를 만나도 조건이나 학력과 소유를 모든 가치로 보려고 한다. 우리가 인간의 시대를 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 참담한 눈물 한방울로 진실의 가치를 아프게 찾아야 할 때인 것이다.세계 최초로 인간 복제회사를 만든 클로드 라엘씨는 인간복제는 윤리가 아니라 영원한 삶의 길이라고 단언한다. 악당이 복제되는 경우를 질문한 기자에게 그는 말했다. 악당은 그래도 인간이므로 화학무기보다는 안전할 것이라고.

그러나 우리가 지금 꿈꾸는 것은 삶의 영원 즉 삶의 양이 아니라 그렇다고 무조건 삶의 질을 높이려는 인간의 허구를 벗어나 참다운 인간의 모습을 찾는 진실이 아닐까. 가을 들판에 나가 생각해볼 일이다. 신달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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