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는 수십년에서 길게는 천년을 훌쩍 넘어, 그것도 한자리에서 옴짝달싹하지 않는 나무들은 우리 민족이 겪은 수많은 아픔을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안타까움으로 내려다보기도 하였고, 때로는 생사의 갈림길에서 배고픔으로 허덕이는 민족에게 자기껍질을 내어주기도 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사는 생명체인 나무는 인간 삶의 현장을 지켜주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유적의 한가운데를 언제나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나무라는 창(窓)을 통해 우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삶의 모습을 풍부하게 조망한 '궁궐의 우리나무'(눌와)를 선보인 박상진(61·임산공학과)교수는 자연과학자이지만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하여 각종 시가집, 농서, 문집, 의학서적 등에 기록된 나무관련 내용들을 찾아내 오늘날 나무가 이땅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재미있고 깊이있게 조명했다.
이 책의 주인공은 경복궁, 창덕궁, 종묘, 덕수궁, 창경궁 등 5대 궁궐에서 현재 자라고 있는 나무들인데, 지역에는 이런 궁궐도 없는데 뭐라고 외면하면 보기 드문 노작 한편을 놓치는 셈이 된다. 5대 궁궐에 있는 250여종의 우리 나무는 주변에서도 흔히 만나는 거의 대부분의 나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1장 경복궁 나무편 배롱나무를 보자. 흔히 백일홍으로 부르는 "꽃하나 하나가 백일을 가는 것이 아니라 작은 꽃들이 연속해 피기 때문에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라고 가이드하면서, 경복궁 내의 나무 지도를 통해 어느 나무가 우리의 주인공인지 자세하게 설명할 뿐만 아니라 삼국유사에 나오는 경주 서출지(書出池) 방죽의 배롱나무 사진도 곁들여놓았다. 이런 식이다. 뽕나무를 설명하면서는 중국 고전 시경에 나오는 상중에 대한 설명과 함께 경산 임당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나무관이 바로 뽕나무로 만들어졌다고 부기하고 있다.
박 교수는 동경 유학시 고고미술사학자 강우방씨와의 만남으로 목재문화재에 깊이 빠져들었다. 지난 91년 무령왕릉 목관의 목재재질을 분석해 일본에서만 나는 금송(金松)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밝혀내 한국과 일본 관련학계를 흔들었고, 최근엔 부여 능산리 출토 백제 목간(木簡) 역시 일본 특산 삼나무임을 규명했다.
"흔히들 우리 나무 문화는 소나무 문화라고 하는데, 소나무는 조선시대 들어 번창했고 그 이전에 대부분 느티나무였어요. 신라 천마총 관재(棺材)도 느티나무죠".독자들은 궁궐에 초청된 초등학생 마냥 '나무 주인'이 된 저자로부터 각 나무마다의 나무살이 역사를 '고려사, 조선왕조 실록'등 수십종의 사서 자료와 함께 구수하게 전해 듣는다.
박 교수는 강화도에서 만들어 해인사로 옮겨졌다는 팔만대장경 제작 장소 문제가 어디인지 정확하게 밝혀내는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아직 가설이지만 팔만대장경 경판의 무게가 280t인데 그걸 해인사로 옮겼다는 것도 그렇고, 나무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해인사 주변에서 만들었을 가능성이 적지 않아요".
또 한번 학계에 신선한 충격이 몰아칠까.
배홍락기자 bhr222@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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