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6년 12월 착수한 대구지하철 2호선 공사, 달성군 다사 문양에서 고산 사월까지 총 29㎞에 정거장 26개소와 두류네거리, 삼덕네거리, 반월당네거리 등 3개 지하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다. 연인원 462만5천명과 덤프트럭 31만7천대, 포크레인 15만5천대, 크레인 8만5천대가 투입되는 이 공사는 2001년 9월 초 현재 공정 55%를 완료했으며 2005년 9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권병안(41)씨, 철근공 경력 20년에 서울·인천·대구 지하철 1호선 등 지하철 공사장에서만 13년을 일해온 철근 전문가다. 서울내기인 그는 공사를 따라 전국을 떠도는 사람이다. 2주에 한번씩 가족을 만나러 서울집으로 간다. 그는 공사장 인부답지 않게 흰 얼굴을 하고 있다. 햇볕이 들지 않는 지하공간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지하철 반월당 네거리 지하공간 공사 현장이 그의 직장. 복공판 아래에서 벌어지는 공사는 땅위의 건축 공사와 판이하다.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 바퀴와 280㎏짜리 복공판이 만들어내는 굉음은 폭격기의 공습을 연상케 한다. 만성이 된 인부들은 개의치 않겠지만 초보자나 방문객은 두려운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고 만다.
반월당 네거리 지하공간은 3층까지 공사가 완료돼 이제 깊이로 인한 아찔함은 없다. 그러나 폭격 같은 복공판의 울림과 철근 자르는 소리,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도 모를 수많은 잡음들은 전장(戰場)을 방불케한다. 게다가 700㎜ 두께의 상수도관과 통신 케이블, 15만4천V 고압전류가 흐르는 두꺼운 전깃줄은 마치 두려운 마음을 품게 하려고 일부러 만들어놓은 영화촬영장 세트 같다.
나무로 짠 계단과 건설초기의 40m 낭떠러지, 여기저기 매달린 백열등은 탄광의 갱을 떠오르게 하기에 충분하다. 처음 지하철 공사에 임하는 인부들은 스스로 걸음걸이가 이상하다싶을 만큼 공포감을 느끼기도 한다.
"지하철 공사장에서 처음 일하는 사람 중엔 포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방진 마스크를 쓰고 안전모를 쓰고 안전화를 신는 게 불편한가봐요. 또 답답함을 호소하는 사람도 있고요".
가끔씩 귀를 파고드는 앰뷸런스의 날카로운 경적 소리는 복공판 아래의 작업에 익숙한 인부들에게도 설명하기 힘든 두려움과 궁금증을 품게 한다.
권병안씨는 그래도 지하철 공사장이 일반 공사장보다 업무 환경이 나은 편이라고 한다. 대형 선풍기는 물론이고 샤워 시설 등이 완비돼 있다는것. 그러나 지난 여름엔 무척 힘들었다고 했다. 유난히 더운 날씨에 한껏 달아오른 두꺼운 복공판이 뿜어내는 열기는 한증막이 따로 없었다고.
권씨의 작업은 철근을 자르고 조립하고 굽히는 일이다. 두께가 다른 철근을 매일 500㎏ 이상 주물러 콘크리트를 칠 수 있도록 짠다. 그는 쇳내음을 좋아한다. 그리고 철근작업을 좋아한다. 길을 걷다가 잘 생긴 건물을 보면 어떻게 철근을 썼는지, 빔으로 기둥을 세웠는지, 가는 철근을 엮어 기둥을 세웠는지 짐작해본다. 건설현장에서 오래 일한 사람들은 으레 한두 번쯤 다치지만 권씨는 지금껏 다친 적이 없다. 자신과 철근이 죽이 맞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권병안씨는 대구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많다.
"복공판에 난 구멍 사이로 담배꽁초를 버리지 마세요. 작업 중에 불이 붙은 담배꽁초가 떨어지면 인부들이 피하느라 사고 위험이 있어요. 또 화재가 발생할 수도 있고요".
하도 담배꽁초가 많이 떨어져 횡단보도 주변엔 아예 복공판 구멍을 모두 막아버렸을 정도다. 그는 또 복공판 위를 자동차로 달릴 땐 속도를 줄여달라고 요청한다. 지하공간에 소음이 심한 것은 자동차가 너무 빠르게 달리기 때문이다. 또 아무런 안전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장안으로 들어와 구경하는 것도 매우 위험하다고 말했다.
철근 공사장을 따라 전국을 떠도는 권병안씨, 그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일이 아쉽지만 전국을 다니는 일이 좋다고 한다. 눈으로 보고 지나치는 여행이 아니라 짧게는 3, 4개월, 길게는 몇 년씩 머물기 때문에 그 지방에 대해서 많이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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