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결국 성악설인가

세상에는 건전한 상식으로는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 것이 많다. 그것이 인간 삶의 윤활유 수준이라면 그런대로 넘어갈 수 있지만 기가 막힐 정도가 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자식을 키우면서 엇길로 가라고 가르치는 부모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가 말문을 트기 시작하면 부모가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거짓말을 하면 아이와 부모간에 올바른 정보를 주고 받을 수가 없다. 짐승이 아닌 인간인 다음이야 아무리 어리더라도 '인격활동의 기본'인 정직을 버리고 거짓말을 할 때는 부모는 가장 심한 매질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 거짓말은 인간의 가장 추악한 행위라는 것을 알고 살아가면서 상호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거짓이 용인되는 사회

그런데 21세기 오늘날 우리 사회의 지도층과 상류층의 행동을 보자. 해마다 국정(國政)감사 때면 보는 코미디지만 올해도 '거짓말' 시리즈가 버젓이 연출되고 있다. 거짓말도 진화(進化)하는가, 그 수준이 점점 높아가고 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거짓 행동은 한두번 경험한다. 문제는 그것이 되풀이돼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거짓'이라는 악(惡)이 반복되고 있는 사회적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쳐다보고만 있어야 하는 선량한 국민은 이제 전율을 넘어 스스로의 자괴감(自愧感)으로 치밀어 오르는 가슴을 달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왜 거짓 행동이 계속되고 있는가. 첫째, 거짓 행동을 하고 그것이 발각돼도 큰 불이익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적.도덕적.사회적으로 완전 매장당하는 서구(西歐)와 같은 관습적인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거짓으로 인한 불명예를 감수하고 재화에 탐닉하는 천민(賤民)상류층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그만 힘만 가지면 '검은 돈'과 연결하려 한다.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부재요, 어두운 돈에 대한 사후 처벌이 미약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셋째는 비록 서글픈 현실이지만 대부분의 국민이 거짓에 대해 상당한 면역력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테러 행위에 대해서는 끝까지 추적, 전말을 밝혀내는 것을 숱하게 봐왔으나 거짓 행동이 건전한 상식에 의해 그 마각이 드러나는 것은 별로 보지 못했다. 자식이 하는 거짓말에는 분연히 매를 드는 사람이 지도층의 거짓말에는 크게 흥분하지 않으니 우리 모두가 '부패의 도가니'에 살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심각한 모순에 빠진다. 거짓이 인간적으로 용인되는 한국 사회가 세계적으로는 보기 드물게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자유주의는 자유경쟁을 기반으로 한다. 자유경쟁은 권력과 간섭을 싫어한다. 특히 거짓과는 정면 충돌하는 개념이다. 거짓 속에서 어떻게 개인이나 기업이 경쟁력을 키울 수 있으며 합리적인 구조조정이 가능하단 말인가. 거짓은 경쟁력이 없어도 잘만 되면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마약이 아닌가.

신상필벌로 다 잡아야

거짓과 신자유주의가 병행하고 있으니 이 나라의 아이덴티티가 무엇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물론 이질적인 두 요소가 합쳐 조화(調和)를 이룬다면 더 할 나위 없겠으나 아무래도 이 둘은 전혀 그럴 것 같지가 않다. 그렇다면 둘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신자유주의는 누가 뭐래도 당분간 방향을 바꿀 수가 없다. 거짓 사회는 쉽게 무너뜨릴 수 있는가. 사회 관습도 하루 아침에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을 게을리 할 수는 없는 법. 한비자(韓非子)는 의(義)를 따르지 않고 권력과 재물에 복종하는 것이 인간본성이라고 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기 때문에 덕(德)으로써 다스려야한다는 맹자의 성선설(性善說)과는 달리 성악설을 내세웠다. 우리 민족은 천성이 착해서 아무래도 맹자님의 말씀이 당연히 맞는 것으로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지금은 그 공식으로는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비록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우리는 상당 기간 성악설을 도입해야 할 것 같다. 이 엄청난 변환의 시대에 한비자를 들먹이는 것은 그의 철학이 신상필벌(信賞必罰)로 요약되기 때문이다. 거짓의 토대 위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할 뿐이다. 윤주태(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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