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무면허 정치시대'

1차 세계대전때 50세 이하 영국 귀족중 20%가 나라를 지키다 전사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지도자 대접을 받으려면 2차대전이나 베트남전에 참전을 했던지 아니면 자원봉사자로서 헌신한자기희생의 경력이 있어야 한다. 나라가 어려울때 지도층 인사들이 이처럼 보여주는 희생과 봉사의 정신-이것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제(지도계층의 도덕적 의무)의 정신이다.

저들은 국난기에 군(軍)의 선두에서 나라를 지키고 재산을 던져 기꺼이 불행한 이웃을 도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라야 비로소 지도층 인사로 인정하고 믿고 따른다. 말하자면 '자기 희생'과 '봉사'야말로 국민들이 지도층 인사로 받아들이게 하는 신분보증서이자 정치 면허증인 셈이다.

조폭 동생 둔 엽기적인 정치인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에겐 이런 여과장치가 없는 것만 같다. 그래서 무면허 정치가 판치고 있다. 과거에 어떻게 살았던 지금 조폭(組暴)과 한통속이 돼 뒷거래를 하고 있던간에연줄만 닿으면 "왕후장상(王候將相)의 씨가 따로 없다"는 식으로 마구잡이로 끼어들어 지도자 노릇을 하러드니 전문성 높은 일류(一流)는 퇴출되고 세상은 ×판이 되는거다. 다시말해 지금은 '무면허' 정치시대다. 이용호 게이트가 바로 그런 경우다. 우리는 이 사건을 지켜보면서 우선 그 '엽기적인' 인적 구성에 경악케 된다.조폭과 벼락부자에다 실질적으로 나라를 움직이는 요직까지 동향사람끼리 골고루 망라된 그 면면들에서 벌써 '무언가 한건 할 것 같은'범죄적 냄새를 맡게되는게 솔직한 우리 심경이다. 그래서 검찰이 아무리 나서 권력실세 관련설을 부인하고 무죄를 선언한다하더라도 '당신들은 법적(法的)으로는 무죄일지 몰라도 도덕적으로는 유죄'라는 마음을 굳히게 되는 게 보통사람들의 마음 아닌가 한다. 따져보자. 지역 출신 조폭들과 정치인, 경찰, 법조인에다 국정원 간부가 뒤섞여 형님, 아우님 하고 싸고 돌고 그 와중에 부도내고 도망다니던 중소기업 사장이 이 정권들어 수천억원대의 대기업가로 변신하는 그런 과정을 참담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이 백성들 아닌가. 그런 터수에 이들에게 "우리는 잘하고 있다"고 아무리 주장한들 먹혀들리 있겠는가. 이용호게이트는 누가 뭐래도 현 정권의 도덕적 불감증을 여지없이 드러낸 비리사건인 것이다. 이 사건을 지켜본 많은 국민들이 조폭과 벼락부자와 유유상종하는 그런 천격의 지도자들에게 세금을 내고 다스림을 당한다는 자체에 부끄러움을 느끼지나 않을지 두렵기조차 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심각한 국난기에 처해있다.

해결할 일은 산적했지만 인재는 없다. 인재 발탁을 지역적으로 한정시키다보니 대통령의 인재 풀이 금방 바닥난다. 이런 터수에 DJ의 정치 실험은 끝간데 없이 계속 되다보니 정치가 바닥을 헤매고 있는 게 아닌가 한다. 가히 제왕적이라할 만큼 막강한 대통령 권력을 바탕으로 아마추어 수준을 능가하지 못하는 초심자들의 정치실험에 경제가 맥을 못추고 민생이 엉망이 되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더군다나 심각한 것은 정치권에 팽배한 도덕불감증이다. 여당의 중진이라면서 집권 3년여동안 개혁이 잇따라 실패해도 직언 한마디 않았고 요즘처럼 이용호게이트로 나라안이 죽 끓듯해도 따끔한 비판 한번 못한 그들이다.

국민들 '나라 망칠까' 두려움에 떨어

그러면서도 무얼 믿고 그러는지 대통령이 되겠다고 동분서주하는 모습에서 양심은 마비되고 권력욕만 남아있는 정치현실을 실감케 된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정책대안 하나없이 집권당 비리 폭로만으로 시종하는 야당도 미더운 존재는 아니다. 여당 비판도 중요하겠지만 지금같이 어려운 때일수록 여당을 대신해서 국가이익을 위해 정책을 개발하고 따뜻한가슴으로 민생을 싸안아야 한다.

그런데도 벌써부터 시장판으로 어디로 나돌아 다니면서 표 얻기에만 급급한 야당 총재의 모습에서 또 하나의 권력욕의 화신을 보는 것만 같아 실망스런 것이다. 요즘 거리에나가면 만나는 사람마다 나라 걱정이다. 누구는 국정이 쇄신돼야 한다고도 하고 누구는 일류는 어디가고 죄다 3류(三流)뿐이냐고 인재 없음을 개탄한다. 모두가 중요하고 옳은 말이다. 그러나 정치가 국민 신뢰를 회복하려면 무엇보다 정치인들이 도덕성부터 회복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게 된다.노블레스 오블리제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국민앞에 부끄러움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정도라도 도덕불감증이 치유돼야 그나마 민심이 정치에 등을 돌리지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우리는 조폭의 친구가 아닌 멋있는 정치인, 감동을 주는 정치인에게 다스림을 받기를 진정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인들의 양심 회복이 급선무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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