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법학자 이종하 박사
"나이 90을 바라보는 지금도 민중이라는 말만 들으면 가슴이 고동침을 느낍니다. 민중은 이 땅에서 그냥 살다 간 이름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우리의 역사를 발전시킨 진정한 주체들이지요".
미수(米壽)도 넘긴 원로법학자 이종하 박사(89.전 영남대 교수). 그가 우리 역사 속에서 민중의 노동과 생활 양태가 어떠했는지를 정리해 민중의 의미를 조명한 '우리 민중의 노동사'(주류성 펴냄)를 내놓았다. 보통사람이라면 거동조차 쉽지 않을 고령이지만 600쪽에 가까운 두툼한 분량도 그의 열정을 가로막지 못했다. 원시공동체로부터 1910년까지 우리 민중사를 정리하는 이번 작업에 4년동안 꼬박 매달린 그는 "생전에 어떤 식으로든 민중의 역사를 정리해봐야겠다는 집념의 결실"이라고 말했다.
일제시대 일본 쥬오(中央)대에서 노동법을 전공하고 40년가까이 대학강단에 섰던 이박사가 노동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학창시절 가슴속에 간직했던 무정부주의에 대한 신념이 평생 민중의 노동과 투쟁의 문제에 천착하도록 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민중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이런 저술은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한 이박사는 이 책이 있기까지 단재 신채호 선생에게서 받은 영향이 컸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단재를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단재와 동지적 관계에 있던 숙부 이규옥(李圭鈺.1990년 타계)으로 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무정부주의와 대척점에 서 있는 법학을 공부한 것은 일종의 탈선이라고 말할 정도로 학창시절(대구고보)에 무정부주의를 신봉했던 이박사는 "나이가 들수록 자유의 신념과 민중에 대한 신뢰가 더욱 강해지고 있다"며 "끝내는 민중의 시대가 오고야 만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라고 말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기층민중이 차별받고 억압, 착취당하는 피지배계급이었지만 실제 역사를 움직이는 주체이자 생산노동의 주체이기 때문에 민중이 없는 인간의 생존이란 없다고 역설했다.
지난 78년 영남대에서 정년퇴임후 부산 경성대에 9년동안 초빙교수로 강단에 서 온 이박사는 전쟁을 가장 증오하는 평화론자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17세 소년시절 에스페란토어를 익혀 지금껏 사용하고 있는 것도 바로 평화와 인류의 형제애를 상징하는 에스페란토의 뜻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에 펴낸 노동사는 40년전부터 계획해 온 민중사 3부작 중 1부입니다. 생활사와 항쟁사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빠른 시일내 마무리할 생각입니다".
이박사는 보름전 66년동안 해로해오던 부인을 먼저 떠나보냈다. 그 허전한 마음을 옆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평생 반려자의 공백이 커 보인다. 하지만 이박사는 며칠 문밖 출입을 삼간 것 빼고는 여전히 집 옆 동산을 산책하며 하루 3시간씩 집필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우리 민중의 생활사'는 현재 마무리 단계. 완결본인 '우리 민중의 항쟁사'에 대해서는 "하늘이 보우하사 남은 수명이 허락하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그는 말했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