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닥토닥'. 우산을 받쳐 든 머리위로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물기 머금은 낙엽이 하나 둘 발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저녁결 언뜻 부는 찬바람, 새벽녘 안개는 겨울이 멀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내달 7일이면 입동(立冬). 수북히 쌓여가는 낙엽이 발에 채이기 시작하는 때다. 사람들은 두툼한 코트를 찾고, 한모금 커피향으로 도회적 늦가을에 젖기도 한다.
그러나 고즈넉하게 농익어가는 산사에 가면 샛노란 은행잎 가로수길이, 빨간 단풍터널이 만추의 서정을 색다르게 일깨워 준다. 낙엽이 진 길을 따라 아니 그길에 푹 빠져 한바퀴 돌다보면 일상에 찌든 때쯤은 말끔히 날아간다. 가을산사. 이번주에는 공기 맑은 산속의 햇살 속에서 원색의 단풍을 즐길 수 있는 산사 나들이를 떠난다.
0..영주 부석사(浮石寺)
중앙고속도 풍기IC를 빠져나와 부석사로 이정표를 잡는다. 소수서원을 지나면 부석면 소천리. 국도변에는 벼말리기가 한창이고, 그 옆의 사과밭은 보기만 해도 정겨움이 넘친다. 빨갛게 익은 늦사과(부사)가 웃는 낯으로 길손을 반긴다. 달콤한 향기는 덤이라며. 대구에서 영주까지 가면서 가을이 천지에 가득함을 느낀다.
입구 주차장에서 잠시 숨을 돌렸다가 매표소,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오르는 길을 밟는다. 바로 은행나무 가로수길이다. 원색의 황금빛 천지다. 그 광채에 '아…'하는 감탄사를 아니 던질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천년고찰 부석사를 초입에서부터 든든하게 받쳐준다. 샛노란 은행잎은 절정으로 치닫기 직전. 고개를 들어도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길 양쪽 은행나뭇잎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 잎이 하나 둘 떨어져 제법 쌓여 있다. 잘 다듬어진 산길. 그러나 되도록이면 천천히 걷자. 당간지주, 천왕문에 다다르면 이 길도 끝나니까. 마음먹고 달려온 길. 아무 상념이라도 좋다. 낙엽을 밟으며 생각에 잠겨보자. 지금처럼 넓진 않았겠지만 이미 천년전부터 사람이 오간 이 길을 걸으면 의상조사와 선묘 아가씨의 애절한 사랑이 가을 하늘처럼 투명하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이다.
천왕문을 지나면 절집 순례. 경내에는 화엄종의 본찰답게 국보 5점, 보물 4점, 경북도 유형문화재 2점이 소장돼 있다. 무량수전으로 오르는 돌계단은 자세히 보면 생긴 그대로다. 범종각, 안양루의 단청없는 누각에도 눈길이 간다.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 그 절묘한 아름다움을 보고나면 자연스레 심호흡을 하게된다. 등을 돌리면 발아래로 시원스레 펼쳐지는 소백산 줄기가 한눈에 들어 오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곳에서 붉게 물드는 해질녘 풍경을 맞이할 수만 있다면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절찬한 느긋한 조망에 감탄하게 된다.
0..선산 도리사(桃李寺)
선산 해평의 너른 들녘. 수확의 기쁨이 줄어든 때문인지 때마침 내리는 비 때문인지 황금들녘이 고즈넉하기만 하다. 도리사 표지판을 볼때만 해도 이 들녘 어딘가에 신라 불교의 발상지가 자리잡고 있겠지 지레짐작 했다. 한 길가에 세워진 일주문. 그 뒤로 빛나는 빨간단풍 행렬에 이끌려 핸들을 꺾었다. 그러나 도리사는 태조산 중턱, 그것도 된비알 200여m를 오르고서야 제모습을 드러냈다. 다행히 주차장이 턱밑에 있어 한숨을 돌릴 수 있었지만.
어느 절이나 입구에 있는 '신라시대 △△가 창건한…'라는 안내판도 보이지 않는다. 매표소도 없다. 열이면 열, 올 사람은 그냥 오라는 듯. 산사 오르막 길, 단풍나무와 어깨동무한 노송과 감나무가 어서 오라 손짓 한다. 언제 따낼까 싶은 감은 감나무에 그대로 매달려 홍시가 되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경내 극락전과 도리사 석탑 뜰앞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닌다. 빗속에서도 계절을 즐기려나 보다. "사진이나 찍고 빨리빨리 가자"는 조급함은 없다. 카메라 타이머를 돌려놓고 서둘러 뛰어가 자세를 취하는 가족들. 활짝 웃는 모습이 평화롭다.
도리사는 불교수용에 별 거부반응이 없었던 고구려·백제와 달리 반발이 심각했던 신라땅에 불교를 처음 심은 곳으로 전해진다. 신라 불교가 공인되기 전 도리사를 개창(눌지왕 418년)한 아도화상이 일선(一善·선산의 옛이름)을 거점으로 불교를 전하기 위해 노심초사 했던 유서깊은 곳이라는 이야기다.
또 하나 아도화상이 도리사를 짓고 금산(金山·지금의 김천) 금릉땅을 바라보니 황학산 중턱에 좋은 절터가 보이므로 손가락으로 절터를 가리켰다 하여 그 절 이름을 지금의 직지사(直指寺)라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노진규기자 jgro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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