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입주를 시작한 성서 첨단산업단지 업체들은 기존 전통산업체와 달리 '공동체 의식'이 높다. 대구 성서공단 3만평에 자리잡은 첨단산업단지는 공장과 사무실 건물 사이에 담을 쌓지 않았다. 누구나 자유롭게 다른 회사로 넘나들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점심도 함께 해결한다. 업체당 직원수가 20~50여명에 불과해 한 업체만으로 식당 운영이 벅차 여러 업체가 공동으로 식당을 마련했다.
공동체 의식은 비즈니스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공군승 (주)성림첨단산업 대표(첨단산업단지 협의회 총무)는 "업체끼리 서로 잘알기 때문에 특정 업체를 방문한 바이어가 그 업체 대표의 소개로 다른 업체와 더 큰 계약을 맺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현상은 입주 업체들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업종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섬유 등 전통산업이 타사 제품 베끼기로 제 살뿐 아니라 남의 살까지 깎은 치사한 경쟁을 벌이는 사실과 크게 대비된다.
첨단.벤처산업은 이처럼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환경과 문화가 존재한다. 열린 마음과 상호협력 정신이 없으면 벤처는 도태된다. 이경환 지앤비커뮤니케이션(주) 대표는 "벤처기업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려면 서로 협력해야 하나 지역 벤처중 필요한 기술을 가진 업체를 알지 못해 시간과 비용을 더들여 서울 등지에서 파트너를 구하는 비효율이 적잖다"고 말했다.
공동체 의식은 벤처업계 내부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지식집약 산업의 특성상 '산-학-연' 협력은 필수적이다. 따라서 벤처기업과 지역대학 교수.연구원들이 원활한 교류를 통해 경쟁력 있는 기술을 개발해야 지역 첨단.벤처산업이 살아날 수 있다. 정보통신부, 문화관광부, 과학기술부, 중소기업청 등의 정책적 지원이 '벤처기업'과 '대학'에 집중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각 대학과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이 효과적으로 수행되는 지 분석하고 조율할 책임은 지자체에 있다. 그러나 대구의 경우, '산-학-관' 협력 메카니즘은 '낙제점' 수준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실질적 지원은 없고 생색만 내고 있다는 것이다. 지식기반산업의 기업인들은 상호 교류를 통해 시너지 효과와 새로운 '지식 창출'이 도모되는 등 '비즈니스'에 보탬이 돼야 각종 모임과 활동에 참여한다. 그러나 대구시, 중기청 등이 주최하는 각종 첨단.벤처 관련 행사와 모임은 지식 창출이 아니라 '관중심 전시용 행사'가 태반이라고 벤처인들은 주장한다.
지자체와 정부기관의 행정적 정책적 지원을 받아야 하는 기업으로서는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이러한 비생산적 행사에 동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구시대적 관료의식을 버려야 첨단.벤처산업이 필요로 하는 행정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대학의 무능과 교수들의 권위주의가 산-학-관 협력을 저해한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많다. 지역 IT업체의 한 대표는 "컴퓨터 관련학과 출신보다 차라리 인문계 출신 졸업생을 채용하는 게 낫다"며 지역 대학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대학에서 가르친 교육이 기술 조류에 뒤쳐져 있어 대부분 새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당장 써먹는 데는 컴퓨터 관련학과 출신이 나으나 채용후 가르쳐보면 인문계 출신이 오히려 '늘 푼수'가 더 있다는 것이다.
또 상당수 지역대학 교수들이 지역사회에서의 역할은 망각한 채 중앙과 연결고리 갖기에 급급하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지식기반 사회에서 지역 경제와 사회, 문화의 중심축은 지역대학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교수들이 이러니 지역 대학들이 지역사회에서 제역할을 수행할 리 만무하다. 강광남 과학기술정책연구원장은 이와 관련 "산-학-관 협력이 실패하는 주 원인은 관료와 교수들이 협력의 궁극 목표가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지역 벤처기업인들은 이러한 지역의 부정적 의식을 타파하고 상호존중하는 파트너십이 넘치는 모임을 준비하고 있다. '벤처리더스클럽'이다. '벤처리더스클럽' 설립에는 지역 벤처기업인들과 학계, 문화계 등 300여명의 인사들이 적극 호응하고 있다. 새로운 벤처문화를 만들려는 이들의 활동이 주목된다.
석민기자 sukmi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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