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고졸하고 기품있는 김정희 삶

"'완당평전'을 쓰면서 나는 고민이 컸다. 평전 형식의 모범을 어디서 구할 것인가였다.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전기문학이 거의 공백에 가까워 내가 샘플로 삼을 만한 것이 없었다.

나는 예술가 전기의 세계적인 고전인 곽말약(郭沫若)의 '이백과 두보', 임어당(林語堂)의 '소동파 평전', 카(E H Carr)의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어보았다. 여기서 나는 전기문학에 대한 많은 일깨움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완당평전'은 역시 완당(阮堂)에게만 어울리는 형식을 찾아낼 수 밖에 없음도 알았다".

미술사학자 유홍준(명지대) 교수는 방대한 자료와 인문학적 상상력을 동원, 20여년만에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삶과 예술과 학문을 복원해 낸 '완당평전'의 후기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추사.완당.... 그가 누구이던가. 우리나라 최고의 서예가, 시와 문장의 대가, 금석학과 고증학에 관한 당대 최고의 석학, '세한도'를 남긴 문인화의 대가, 문사철 시서화를 겸비한 고매한 학자가 아니었던가.

시문과 고증학.금석학.경학.불교학.서예.회화에 이르는 범인으로서는 꿈꾸기도 어려운 그의 성취와 한 인간으로서의 파란 많은 여정을 총체적으로 규명하는 작업이었으니 그럴만도 했으리라.

김정희의 삶을 탄생에서부터 만년까지 10개의 장으로 나누어 정리한 완당평전은 인간을 배제하고 학문만을 논한 딱딱한 평전이 아니어서 좋다. 김정희의 인간적 고뇌와 학문적 연찬과정.장인적 수련과정을 육성을 듣듯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신동 김정희, 아버지를 따라가 접한 연경학계와의 교류, 학예의 연찬과정, 출세와 가화(家禍), 완당 바람, 제주도 유배시절, 강상(江上)시절, 북청 유배시절. 과천시절 인간 김정희의 모습을 유 교수 특유의 탁월한 입담과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긴장감있게 풀어냈다.

우리나라 서예사에서 완당의 업적이란 어떤 것인가. 낡은 법첩(法帖)을 따르는 매너리즘과 향토색에 젖어있던 촌티나는 조선의 글씨를 고졸하고 준경한 기품을 간직한 개성적인 서체로 구현해 국제적인 감각의 선풍을 일으키지 않았던가.

따라서 추사체의 미술사적 의의는 우리나라 속에서만 따질 일이 아니다. 중국 서예사, 어쩌면 일본과 한국을 포함한 동양 서예사, 사실상 세계 서예사라는 틀에서 그 위치를 가름해 볼 만하다. 완당 김정희는 그렇게 당당한 정신유산으로 우리 가슴에 남아있는 것이다.

저자 유홍준 교수는 완당평전을 쓰면서 줄곧 김정희라는 인간상과 예술가상.학자상 모두를 상징할 수 있는 문구 하나를 어렵게 찾아내면서 평전의 끝을 맺었다. 그것은 산숭해심(山崇海深). '산은 높고 바다는 깊다'란 글귀이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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