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식탁에서 초등학교 6학년인 딸에게 물었다."북한이 핵 폭탄을 만들려하고 있다는데 어떻게 생각하니?"
"남북이 빨리 통일되면 좋지. 우리도 핵 폭탄을 가질 수 있잖아. 그렇지만 통일이 안되는데 북한이 핵 폭탄을 가지면 안돼. 우리는 없으니까"."우리가 핵 폭탄을 가지면 왜 좋은데?"
"미국이 우리나라를 쉽게 깔볼 수 없어지거든".
"미국이란 나라가 싫은가 보네".
"우월주의. 무엇이든지 잘난 체 하는 것이 보기 싫어".
북한의 핵 개발이 갖는 의미, 우리와 미국의 관계로 이어가다 '초교생에게는 너무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에 부녀간의 심오한 대화를 서둘러 끝냈다.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 일각에 깊숙이 자리한 반미감정과 통일지상주의의 일단을 어린 딸에게서 보는 것 같아 놀랐다.
---핵과 햇볕
지난 93년에 이어 또다시 터진 북핵 파문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북한의 핵활동 동결을 골자로 한 제네바합의와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반드시 지켜져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일부에서는 핵확산 금지조약(NPT)과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핵무기를 이미 가진 강대국을 위한 것이라며 이를 폄훼하는 목소리도 아주 없지는 않다. 통일이 되면 북한의 핵 기술이 우리 것이 된다는 해괴한 이해득실도 갖다 붙인다. 근저에는 미국에 대한 거부감도 깔려있다.
그러나 핵에 대한 진정한 논쟁은 그것을 어떻게 피하느냐 하는 것뿐이다. 때문에 핵무기에 관한 한은 평화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고 북한의 핵기술이 우리 것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일고의 가치도 없다.북핵 문제를 지켜보면서 가장 의아한 일은 정부가 북한의 핵 문제를 지난 99년부터 알면서도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게다가 지난 8월 미국을 통해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확실히 알았으면서도 대북지원과 경협을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속했다니 도저히 납득이 안 간다.
비밀을 지키는 행위는 어떤 정치 형태에서도 운명적으로 존속되게 되어 있다. 은폐 행위라 하면 우리는 기만 행위를 연상하는 일이 아주 흔하지만 개인 및 공공의 가치의 보호를 위해서는 은폐 행위가 적절하고 또한 필요 불가결할 수도 있다.그러나 민족의 안위가 걸린 북한의 핵개발 문제를 모른 척하고 숨겨야 할 정도로까지 보호해야할 공공의 가치가 있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북한의 핵 개발 문제가 알려지면 가장 크게 다치는 것은 현 정권의 햇볕정책이 될 것이다. 물론 햇볕정책은 필요하고 또 좋은 정책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같은 민족이 헐벗고 굶주린다는데 도와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그렇지만 핵 문제는 탱크, 전투기와 다르다. 인접한 국가에 이것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공포와 불화, 불신을 야기한다. 그런데도 그간 아무런 문제제기없이 햇볕정책에만 매달려 온 정부의 안이한 상황 인식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누가 햇볕을 가리게 하나
햇볕정책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중요한 이정표가 됐음은 분명하다. 남북이 서로를 더 잘 알고 통일을 위한 긴긴 여로의 출발점에 드디어 이르렀다는 기대도 안겨줬다. 그러나 아쉽게도 햇볕정책의 변화는 불가피해졌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계획이란 짙은 먹구름이 몰려왔는데 종전과 같은 따뜻한 햇볕이 내려쪼이기를기대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정부는 햇볕을 가리는 먹구름을 몰고 온 것은 북한의 책임이며, 먹구름을 걷도록 하는 것 역시 북한의 몫이란 점을 분명히 해야한다. 아시안게임 기간중 부산 다대포항에 머물던 만경봉호가 북한으로 돌아갈 때 북한 응원단이 헤어짐을 아쉬워하면서 비치던 눈물을 우리는 아직도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북핵 문제가 다시 불거져 나온 지금, 북한 응원단이 탔던 만경봉호의 모습과 그날의 감격이 흐릿해지고 지난 83년12월의 다대포 무장간첩선 사건이 오버랩되는 것은 내가 아직 냉전주의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문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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