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고 거리로 뛰쳐나가는 여성, 끊임없이 동굴의 꿈을 꾸는 마술사, 막상 테스트를 하면 전혀 능력이 발휘되지 않는 초능력 소년, 소문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그것을 통해 말의 위악성을 발견하게 되는 기자…'.
병영소설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로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하며 1990년대 작가로 자리매김했던 작가 하창수(43)가 정신병자들의 임상보고서라 할만한 소설 '함정'(도서출판 책세상)을 출간했다. '함정'은 작가가 지금껏 화두로 삼아왔던 '다른 세상 꿈꾸기'의 결정판으로 이제까지 추구해왔던 작품세계와는 다른 낯설고 이질적인 작품이다.
그는 군대생활에서 목격하고 들었던 죽음과 절망의 문제가 소설을 쓰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의 작품 속에는 줄곧 죽음이 등장했고 죽음을 사색하는 사람이 나왔다. 그런데 이제는 죽음도 삶의 일부분이라고 했던 릴케를 받아들이고, 삶이란 죽음의 죽음이라는 불교적 태도도 수용한 것일까.
이번 소설에는 죽음이나 죽음에 이르는 절망이 아니라 삶을 더 적극적으로 묻는 사람들의 얘기가 등장했다. 정신병원 보조의가 20년간 만나왔던 환자들의 임상을 전달하는 보고서 형식으로 기술된 이 소설은 '존재란 무엇인가'라는 거부할 수 없는 철학적 명제를 충실하게 되묻는다. '누구나 정신병자가될 수 있고, 누구나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이야기하고 있다.
주인공이 없는 소설, 스토리가 없는 소설, 결과가 없는 소설, 그러면서도 인간과 영혼과 우주에 대한 의식을 단계적으로 요구하는 소설. 그래서 이 소설은 '함정'이다. '나는 누구인가'.'너는 누구인가'.'나는 너인가'.'이곳은 어디인가'…. "하늘 아래 분명한 것 하나 없는 삶 속에서 미쳐버리지 않는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습니까". 작가의 역설이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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